주인님, 주인님! 램프의 요정 지니입니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세요.
어릴 적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알라딘의 지니가 나타나서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난 뭘로 해야 하지? 몇 년 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때도 있었다. 어차피 실현 불가능한 일인데, 왜 그렇게 고민이 많았을까? 지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시 나의 소원은 돈도 명예도 아닌, 얼굴에 난 여드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169cm에 45kg이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대부분이었다. 그 수치는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에겐 황홀한 연예인 같은 몸매란 169에 45였던 거 같았다. 또 하나는 모든 남자 친구들이 나를 보면 뿅 반했으면 좋겠다는 그 세 가지가 내 소원의 대부분이었다.
십 대 시절, 내 얼굴은 여드름으로 전체가 덥혀 있었고, 뚱뚱하고 짜리 했으며, 이십 대가 되어서 3:3 미팅을 해도 나만 에프터가 들어오지 않았었다.
학교생활이 끝나고 사회에 뛰어들면서, ‘소원’이라는 장르는 ‘초능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고객을 보면 초능력을 발휘해서 길가다가 휘리릭 넘어뜨리고 싶었고, 부정부패하며 도덕성이 결여된 선배를 보면 나에게 투시력이 생겨서 그가 얼마나 뒷돈을 챙기는지 샅샅이 보고 싶었다.
‘소원’에서 ‘초능력’으로 장르의 변화란, 내가 이루고 싶은 일보다는 정의와 의리가 결여된 사회에 혼찌검을 내주고 싶었던 깊숙한 내면의 소리였다.
마흔 살에 들어간 대기업에서 내가 갖고 싶은 한 가지 초능력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상대방을 기운 빠지게 하는 초능력을 갖고 싶어!”
팀장님, 상무님, 전무님 할 것 없이 대부분 다혈질이었다. 비록 겉으로 다혈질 표시는 내지 않을지 언정 이마에 핏줄이 서고 눈이 빨개지는 게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차라리 내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상사들은 괜찮았다.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 분들은 결국엔 응징을 했기 때문에 난 늘 뒤를 보면서 다녔었다. 어느 날 활활 타오르는 다혈질의 전무님이 몸이 아프셨다. 회의를 하는데 당연히 큰 소리가 한번 나올 때가 되었는데, 조용히 잠자코 계시는 거였다. 기운이 빠져서 소리 지를 힘도 없으셨나 보다. 그날의 회의는 정말 행복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때 난 결정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초능력 한 가지를 준다면 상대방을 기운 빠지게 하는 초능력이 갖고 싶다고.
며칠 전, 엄마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인테리어 디자인했다는 딸내미 때문에 집안 수도꼭지에서 물만 떨어져도 나를 부르셨다. 3년 전쯤 친정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했는데, 그때 했던 공사로 인해 아랫집에서 유리가 더러워졌다고 유리 3장을 갈아 달라고 했다. 아랫집에서 가격을 알아봤더니, 140만 원이란다.
뭐라고? 친정 집에서 공사를 3년 전에 했는데, 그때부터 시멘트물도 떨어지고 방수가 새서 내려온 물 때문에 페어 글라스 사이에 결로와 먼지가 들어가서 밖이 뿌옇게 보인다고 유리값 140만원을 내라고?
거실에 있는 큰 창문에 끼워진 유리는 보통 22mm 페어 글라스이다. 페어 글라스란 두 장의 유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하여, 주위를 접착제로 접착해서 밀폐하고, 그 중간에 완전 건조 공기를 봉입하여 단열, 차음, 결로 방지 등의 효과를 보기 위한 유리이다. 그러므로 두 장의 유리 사이에는 결로가 생기거나 먼지가 들어갔다면 페어 글라스가 하자가 났거나, 너무 오래 사용해서 유리 접합 부위가 문제가 생겨서 공기가 들어가면서 결로가 생기는 것이다.
아랫집 여사님이 하도 엄마에게 140만 원 유리 갈아 달라고 해서 나에게 SOS를 청하신 거다. 그 분과 통화를 했다. 우리 집 공사 때문에 시멘트물이 떨어졌다면 그건 이미 3년 전이고, 그것 때문에 아직 시멘트물이 있다면 그건 청소를 해드리겠으나, 유리 사이에 먼지가 들어간 것은 윗집 공사와는 별개로 유리의 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소리 질렀다.
LG 창문으로 새시를 10년 전쯤 갈았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창문으로 했기 때문에, 유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 집 공사할 때부터 창문에 결로와 먼지가 끼기 시작했다고 소리 지른다.
이렇게 흥분하실 거면 전화하기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는데, 더 소리를 지른다. 자기 남동생이 LG건설을 다니는데 내일 물어보려고 불렀다고 한다. 일단 내일 LG 새시에 전화해서 유리 사이에 결로가 생기면 그것이 윗집의 문제인지, 유리의 문제인지를 물어보라고 하고 일단락했다.
나에게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몸과 마음에 기운이 쭉 빠져서 소리를 지르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내일은 그녀가 어떤 걸로 트집 잡으며 소리를 지를지,
조만간 숲으로 들어가서 피톤치드 맡으며 캠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