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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Oct 16. 2020

집 앞 잘 나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왜 망했을까

집 앞에는 호수 공원이 있다.


주중 오후 3시 이후에는 애들과 아이 엄마들,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돗자리도 깔고, 운동도 하고, 매우 활기찬 호수 공원이다. 처음 이 근처로 이사 오기로 결정했을 때도 이 공원이 결정의 요인으로 작용했었다.

이 근처는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산책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작은 카페, 두부 집, 시골 밥상 집, 국밥 집 정도의 밥집이 전부였다.


작년 봄, 신랑과 공원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공원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이 동네 큰 건물 1, 2층이 공사하는 것을 보며 지나다녔다. 어느 날, 운동 후 목이 말라서 물을 사려고 두리번거리다가 공사 마무리하고 있는 그 집을 발견하였다. 동네에서 얼굴도 틀 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우리 부부는 이 동네 살고 있는데, 공원 운동하다가 목이 말라서 그러는데, 혹시 물 한잔 얻어 마실 수가 있나요?”

가게 주인은 흔쾌히 승낙하며 물 한잔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셰프이자 가게 주인이었다. 대구 사람이었고, 이탈리아 ‘꼬르뜨블랑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한 조리학교에서 수료하고 이탈리아에서 몇 년을 미쉐린 3 스타의 레스토랑에서 사사를 받았고, 이미 대구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해서 대박을 치고 돈을 꽤 벌었다고 했다. 이젠 서울로 진출하고 싶어서 올라왔는데, 경기도에 매형이 가지고 있는 이 건물 1층과 2층에 아주 싼 가격의 임대료로 일단 레스토랑 오픈을 하고, 다음 점포는 서울 가장 중심지로 진출하겠다는 멋진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느닷없는 물 한 모금 나그네 부부에게 레스토랑 주인은 마치 투자자에게 설명하듯, 자신의 스토리를 전부 털어놓으며 레스토랑 투어를 시켜주었다. 자신감이 차 있는 젊은 셰프의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았다.


대략 눈대중으로 1층은 100평 정도, 2층은 70평 정도였다. 주방은 홀 면적보다 훨씬 넓었다. 본인이 셰프이기 때문에 손님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여기에서 일하는 셰프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주방 내부는 각종 가장 비싼 장비들로 가득 차있었다. 시설의 마감재는 너무 고급이었고, 의자와 테이블 등의 가구들은 카피가 아닌 오리지널이었다. 1층과 2층이 있는 레스토랑인 경우 보통은 한 층만 주방이 있는데, 그 집은 1층, 2층 전부 주방이 따로 있었다. 장비 값만 억 단위로 산정되었다. 레스토랑 로고 디자인도 디자이너에게 맡긴 것 같은 간판이 달려있었고, 냅킨에도 로고가 새겨 있었다. 메뉴판의 종이 질도 고급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직업인 나는 늘 이런 식으로 공간과 디자인을 훑어본다)


그는 덧붙였다. 여긴 그냥 파스타와 피자만 파는 그런 일반 레스토랑이 아니라고 했다. 고급 스테이크까지 취급할 정도로 조리가 수준급이라며, 가족 3~4인 세트 메뉴가 85,000원이라고 했다. 이 공원 근처는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금액이 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대구에서도 그랬듯이 아마 대박을 칠 거라며 자신만만했다. 지금 좀 고민이 있는데, 주방은 자신이 셰프이기 때문에 자신 있지만, 지금 홀 매니저와 홀 직원들을 뽑지 못해서 오픈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빨리 뽑아서 오픈할 거라고 했다.


한 번 먹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 부부는 그 후에도 몇 번을 스쳐 지나가며 호수공원을 운동하러 다녔다.


초반에는 손님이 많이 있었다. 대박의 기운이 보였다. 그러나 하루하루 갈수록 눈에 띄게 손님이 줄더니, 어느 날 현수막이 붙었다.

가족 3~4인 점심 세트 15,000원. 저녁 세트 19,500원

“오빠! 저 집 가족 세트 메뉴가 85,000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가격을 많이 내렸네.”


금요일 저녁과 주말이면 호수 공원은 북적북적해진다. 동네 사람들 뿐 아니라, 연인들, 가족 단위로 놀러 와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로 즐비해진다. 몇 개 없는 음식점들은 전부 웨이팅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만 한가했다. 이 동에 파스타 파는 집이 없어서 잘 될 줄 알았는데, 아무도 그 집을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오픈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동네의 유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았다. 계속 불이 꺼져 있는 그 집을 지날 때마다 나와 신랑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벌써 그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지 1년이 넘었다. 간혹 들여다보는 불 꺼진 1층에는 곰팡이가 가득한 식당 내부와 색이 바랜 가구들이 그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처음의 포부와 셰프의 자신감, 그리고 자신하던 맛이 있었고, 최고의 장비로 요리를 하던 그 잘 나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왜 망했을까?


작게 시작하라.
인테리어에 돈을 들이지 말고 음식을 연구하라.
돈을 쓰려면 손님이 접하는 공간에 써라.
바닥, 벽, 천정은 저렴하게, 이동형 가구는 고급지게, 그래야 가게를 옮기더라도 비싼 가구는 들고 갈 수 있다.
수직 2개층 이상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을 땐 동선계획이 중요하다.
주방도 사람이 중요하지만 홀에 배치된 사람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손님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가격 정책은 가장 중요하다. 주변의 시세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파악해라.
홀:주방 = 70:30


나는 셰프도 마케터도 아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몇십 년 동안 수많은 고객과 만나면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 정리한 디자인 가이드북이 있다. 그 안에 적힌 내용들과 비교했을 때, 집 앞 잘 나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하나도 일치된 것이 없었다.


그의 요리는 분명 맛이 기가 막혔을 거 같다.

정말 맛으로만 승부하기엔 소비자는 너무나 영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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