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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Sep 25. 2021

독립 프로젝트

어느 날, 개그우먼 김숙이 울면서 송은이를 찾아갔다. 하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또 하차를 한 것이다. 패널로 나왔던 김숙은 별로 재미없다는 이유 때문에 잘렸다고 했다. 송은이는 좋아하는 후배가 하차했다는 말에 화가 났지만, 송은이 역시 방송에서 별로 집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터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방송국에서 우리를 안 써주면, 우리가 우리를 쓰자! 우리가 회사를 만들고, 우리끼리 방송을 하면 돼. 그럼 잘릴 일이 없잖아.”


그렇게 송은이와 김숙은 팟캐스트로 ‘비밀 보장’, 일명 ‘비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익명의 청취자에게 사연을 받아서 그녀들의 인맥을 통해 바로 해결해 주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누군가 남자에게 차여서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이영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어떤 청취자가 여자 친구와의 고민 상담을 하면 최화정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해주고, 세금이나 영수증 관련 문의를 하면 계산이 밝은 김생민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렇게 방송은 급격히 인기 상승이 되었고, 그로 인해 파생된 프로그램이 ‘김생민의 영수증’,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의 ‘밥 블레스 유’였다. 분명 이 프로그램들을 계기로 이영자는 제3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고, 최화정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어느 방송국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송은이는 사실 별로 재미가 없는 개그우먼이었지만, 그녀는 아이디어 뱅크였으며 실행력이 좋은 PD였다. 김숙은 정해진 틀에 맞추어 웃기는 개그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과 재치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그녀들은 각자의 유튜브로 하고,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이제는 수시로 볼 수 있으며, 그녀들의 회사인 ‘비보티비’는 4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송은이와 김숙은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유관순 누나의 ‘독립만세’ 이후 최근 ‘독립’이라는 단어는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공유, 대안, 부케, MZ, 공정, N 잡, 중고마켓’의 단어들의 뛰어다녔다면 근래에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날아다니고 있다. 송은이 김숙 역시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지금 해석해본다면 그녀들의 ‘독립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독립 영화, 독립 출판, 독립 서점, 독립 잡지, 독립 건축, 독립, 독립, 독립만 갖다 붙이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독립(獨立)

1)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2) 독자적으로 존재함

3) 개인이 한 집안을 이루고 완전히 사권(私權)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짐


어학 사전은 늘 어렵게 해석해 놓는다. 독립이란 그냥 혼자 전부 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능력적 자립이 바로 독립을 말한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한 지 오래되어서 ‘독립’의 개념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독립출판으로 에세이 한 권을 내보니, 무슨 뜻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혼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편집하고, 내지와 표지도 만들고, 교정 교열하고, 샘플북 제작해 보고, 또 교정교열 백 번쯤 하고, 인쇄 맡기고, 홍보하고, 인스타그램 따로 만들고, 독립서점 100군데 넘게 입고 메일 보내고, 입고 요청 들어오면 한 권씩 포장도 하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 보내고, 메일로 감사 인사 보내고..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 법석이었다. 유명한 출판사를 통한, 교보문고 ‘새로 나온 책’ 칸에 꽂힌 두툼한 책은 아니었지만,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 후 나온 책 한 권은 자식은 없지만, 자식과 같은 마음이었다.


독립출판으로 책 한 권 내었으니, 이젠 내가 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독립’을 선언할 때이다. 20대에는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만두었고, 그만두면서 6개월의 월급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작은 인테리어 사업도 했었고, 도급순위에 오를 정도의 인테리어 사무실과 대기업 디자인실에도 근무했었고, 또 그만두기를 반복하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회사를 다니고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다니면 월급이 나오니 좋지만, 매일 아침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단전호흡 같은 에잇! 하는 구령과 함께 때려치우면 지긋지긋한 팀장의 갈굼과 따박따박 대드는 후배들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다음 달 닥칠 카드 값 걱정에 김밥천국에서도 원조 김밥만 먹게 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니 이젠 인테리어 디자인계의 독립선언문을 나 스스로 만들어볼 때가 되었다. 사실 이젠 내 나이를 고용해 줄 회사가 없기 때문에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독립 인테리어, 독립 디자인을 구축하기 위한 브랜딩이 정립되면 분명 단지 혼자 다 한다고 의미를 두는 디자인의 개념을 넘어서 나만의 독립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니즈는 충족될 것이다. 기업에서 죽도록 만들어 대던 ‘매뉴얼’과 ‘모듈 시스템’의 획일성은 잠시 잊어야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삶과 생활 방식, 생각, 그리고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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