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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Nov 07. 2020

음식물 쓰레기, 이까짓 게 뭐가 어렵다고

매일 새벽, 단지 내 쓰레기통을 수거하러 오는 ‘윙~’하는 소음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는 바로 일요일이다.


새벽 기상이 익숙한 나에게 4:30~5:00쯤 울리는 트럭의 음식물 쓰레기통을 처리하는 소리는 지금이 몇 시인지를 알게 해준다. 일주일 중 음식물 처리 트럭이 안 오는 일요일에 혹시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면 이미 한 통은 다 차 있어서, 꾸역꾸역 뚜껑을 비집고 나오는 녀석들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 옆에 여분의 통을 가져다 놓아도 사람들은 첫 번째 통을 사랑하나 보다. 그런 이유도 알 거 같다. 첫 번째 통에는 페달이 있어서 발로 뚜껑을 열 수 있지만, 두 번째 통은 손으로 뚜껑을 열어야 한다. 첫번째 통은 페달에서 발을 떼면 뚜껑이 스르르 닫히지만, 두번째 통은 자칫 손으로 힘 조절을 잘못해서 뚜껑이 쾅 닫히게 되면 입구에 묻어있던 음식물의 잔재들이 내 옷에 튈 수도 있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조심조심해야 한다.

보통은 일요일 오후가 되어야 첫 번째 통이 가득 차지만, 요즘은 가족들이 집에서 밥을 많이 해 먹는지, 토요일 오후만 되어도 이미 두 번째 통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늘 토요일 오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첫 번째 통을 열었다. 꼭 차 있는 통 위로 비닐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가 왕좌에 앉은 대왕마마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 잠시 멈춰서 있었다.



이까짓 게 뭐가 어렵다고 이 위에 멋지게 얹어놓고 갔을까? 이걸 버리고 간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사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 넣는 방법보다 더 쉽다. 두 번째 통 뚜껑을 열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후 살며시 뚜껑을 닫고 비닐은 옆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집에 가서 손을 닦으면 되는 거다.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하시는 분들은 어둠 속에서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고, 통째로 트럭에 붓기 때문에 결국, 이 음식물들 사이에 비닐은 들어갈 것이고, 이걸 말리는 과정을 통해 거름으로 만들고, 다시 동물들에게 먹이고, 그 동물들은 우리 입으로 들어 올 텐데..

비닐 한 장으로 내 마음은 서글퍼졌다. 결국, 만지기 싫었던 누군가의 음식물 쓰레기를 두 번째 통에 버려줬다.

남의 눈에 안보이면 내 눈에도 안 보이는 걸까?
남을 속이는 것과 나 자신에게 거짓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갑자기 예전에 모셨던 대표이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김 그룹장, 인테리어 할 때 고객들 눈에 보이는 데는 돈 좀 바르고, 안 보이는데 있지? 설비, 전기, 방수 그런데 있잖아. 그런 데는 싸게 싸게 해. 앞은 보기 좋게, 뒤는 싸구려로. 알았지? 그렇게 투자비를 아껴야지, 자네는 너무 고지식해, 사람이…”

나의 고지식함을 이해 못 했던 융통성이 아주 많았던 그는 결국 2년 후 회사를 떠났고, 다른 대표이사님으로 교체되었다.


전기, 설비, 방수 등 인프라 시설이 공간 구축의 기본이듯이, 작은 비닐 한 장, 안 보이는 양심 한구석이 ‘나’라는 인성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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