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서리 Oct 13. 2020

고수는 재야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 날, 신랑이 전혀 모르는 분야인 건축에 대해 아는 건축가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너무 전문적인 분야라고 하면서 그분도 잘 모르겠다고 했고, 발이 넓은 부동산 중개인을 소개해줬다. 그분을 통해 다른 건축가를 소개받으라는 말이었다. 그 부동산 중개인은 다른 건축가를 소개해주지 않고, 본인이 건축에 대해 알고, 건축을 전공해서 지금은 부동산으로 직업을 바꿨다고 하셨다. 신랑과 2시간을 통화하며 건축에 대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정작 신랑이 질문한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못하셨다.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물었다.


“오빠, 그 부동산 중개인 하시는 분, 혹시 재야의 고수가 아닐까? 건축에 대해 2시간을 통화하시네.”

“고수는 재야에 머물지 않아. 이미 사람들이 알아봐서 재야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질 않거든.”


몇 년 전 읽었던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한근태 저>가 생각나서 다시 한번 펼쳐본다. 내 마음에 꽂히는 몇 자를 적어본다.


 고수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능력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대부분은 조직의 힘으로 살아간다. 조직 안에서는 폼을 잡지만 조직을 떠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개인기보다는 조직의 후광 덕분에 버텨 온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내 실력 덕분인지 조직의 실력 덕분인지를 늘 질문해야 한다. 이를 냉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조직의 힘으로 살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수들은 혼자서도 너끈히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의 생계를 걸어 본 절실함에서 나온다.

-“밥그릇을 걸어야 한다” 에서


도가 튼 사람은 단순하다. 거칠 게 없고 눈치를 보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무리가 없고 그런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물 흐르듯 산다. 사사 무애事事無碍의 경지다. 하수와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고수와 있으면 시원하다. 하수는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고수는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만든다.

-“심플하게 산다”에서


내 인생 고수는 만나봤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난 누군가에게 과연 고수(高手)였을까?

아니, 고수는 바라지도 않으니, 하수(下手)만이라도 되지 않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무릎까지  예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