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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Sep 24. 2021

우리는 스스로 공정한가_오징어게임


456명이 모였다. 모두 '돈'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쌍문동에서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이라고 동네 자랑이었던 '상우'는 선물옵션 주식투자 실패로 60억 빚을 지고 생선가게를 하는 엄마에게 미국 출장이라는 거짓말로 속이고 게임에 참석한다. 북한에서 가족과 남한으로 넘어오다가 아빠는 사살당하고, 엄마는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남동생과 단둘이 귀순한 '새벽'은 북에 있는 어머니를 데리고 오기 위해, 보육원에 있는 남동생과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다가 돈이 필요해서 오징어 게임을 하게 된다. 조폭인데 노름을 하다가 형님의 돈까지 손을 대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로 참석한 '덕수', 코리안 드림으로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오지만 몸과 마음을 다치고 사장에게 상해치사를 입히고 도망 다니는 '알리', 뇌종양을 가지고 있는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늙은 노인, 그리고 구조조정과 퇴직 이후 돈을 벌기 위해 도박, 사채를 쓰고 이혼한 아내에게까지 돈을 빌리는, 수술이 필요한 병든 노모와 사는 '기훈'까지 456명은 각자의 목숨 값 1억씩 을 걸고 게임에 참석하였다. 게임에서 이긴 마지막 한 사람에게 456억이라는 막대한 상금의 유혹이 있지만, 1/456의 확률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게 된다.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이 여기서 죽든, 밖에서 죽든 어차피 사는 건 '지옥'밖에 남지 않은 군상들의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한 상대방 죽이기'게임이다. 초반에는 성선설에 근거한 인간들의 모임에서, 서로 협력하며 도와주는 그들이, 게임이 진행되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적어질수록 인간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성에 근거한 모습이 마음을 긁는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는 유독 '평등'과 '공평'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진행요원과 게임 참가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거래로 인해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페어게임의 원칙'을 깬 두 사람을 응징하는 장면에서 게임 프런트맨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망쳐놨어. '평등'이야.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너희들이 그 원칙을 깼어."




16살 중학생이었던 나는 예중 피아노과를 다녔었고, 같은 학교 재단의 예고 시험 준비를 위해 하루 5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매달려 연습만 하고 있었다. 200점 만점이었던 고입 연합고사도 넉넉한 점수를 받았었고,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도 했던 실력으로 실기시험 점수도 상위권에 속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합격할 거라 믿었지만, 늘 당연하다는 안도감은 내 뒤통수를 치곤 했었다. 시험 당일, 2곡의 피아노곡을 무사히 잘 쳐내고 밖으로 나와서 의기양양하게 엄마에게 붙을 거 같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 뒤 발표지만, 미리 당락을 아는 건 그보다 하루 전날이었다.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학교에 문의를 했었고, 나는 엄마 옆에서 선생님과 통화하는 엄마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예고를 떨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일 10명을 선발할 예정이었다면, 이미 5명은 예정되어 있었다. 육성회 엄마의 딸, 재단 이사장의 딸, 어느 어느 기업의 아들에게 시험이란 그저 눈 가리고 아웅 격이었다. 남은 5명 중 국가유공자, 외국에서의 특혜자 등이 2명이고, 남은 3명 중 2명에겐 암호가 있었다. 시험에 붙을 수 있는 암호! 어느 곡의 어떤 부분에서 이상하리만치 페달을 길게 밟아야 하는 암호를 미리 짜 놓고, 그 암호에 해당하는 금액이 오고 갔었다. 그리고 아주 공정하게 뽑아야 하는 인원은 단 1명! 결국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10% 안에 들어야만 해당 예고에 합격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기업인이 아니었고, 엄마는 육성회가 아니었다. 국가유공자도, 외국 특례자도, 암호를 돈으로 살만큼의 부자도, 혹여 돈이 있었더라도 암호 법칙을 알만큼 정보력이 좋지도 않았었다. 나는 결국 일반학생의 10% 안에 들지 못하는 특출 나지 못하는 실력으로 인해 떨어졌다. 범위가 20%, 30%, 아니 100%의 일반적인 범위였다면 나는 당연히 예고 피아노과를 합격했겠지. 16살에 겪은 최대의 실패로, 일반고등학교를 진학하였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예중 피아노과를 나왔다는 이유 만으로 지긋지긋하게 꼴 보기 싫은 피아노를 고등학교 3년 내내 합창단, 중창단, 선생님들 성가대 중창단, 개인 성악 반주까지 도맡아 했었다. 덕분에 대학을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세상이 너무나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6살부터 시작한 피아노를 16살까지 너무 열심히 연습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피아노로 예고를 가고, 대학을 가고, 선생님이 되고, 교수님이 되고,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었다. 우울한 틴에이저를 겪어냈고, 내 머릿속엔, '나는 절대적인 공정함을 위해 살 거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23살에 우연히 찾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을 20년 이상 지속하며 살고 있다. 디자이너 생활 20년이 지나고 나니 디자인 매니저가 되어있었다. 30명 이상 함께 한 co-worker들 사이에서 나는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A에게 평가점수를 높게 주면 B는 불공정하다고 했다. B에게 빅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C는 불공정하다고 했다. C에게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A는 불공정하다고 했다. 그 누구도 공정과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평등의 잣대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나도 같았다. 팀장이 나에게 주는 높은 점수는 공정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열심히 일한 만큼 점수를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매니저가 나보다 더 인정을 받으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거 다 걸 테니까 자네 것도 다 걸어. 내가 가진 전부랑 자네가 가진 전부를 걸고 딱 한 판만 하는 거야. 그게 공평하잖아."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영감님은 구슬이 1개이고 나는 19개인데!"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전부 가져간 건 말이 되고?"


주인공 기훈은 노인과 1:1 데쓰매치로 이루어진 구슬치기에서 치매 때문에 헛소리를 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을 속여 그의 구슬을 전부 가져온다. 단 1알이 남은 노인은 자신의 구슬 1알과 기훈의 19개의 구슬을 전부 걸고 딱 한판의 승부를 가리자는 제안을 한다. 기훈은 노인으로부터 구슬을 뺏은 과정은 망각한 채 단지 결과로 남은 구슬만으로 재승부를 하자는 노인의 제안에 그것은 불공평하다고 한다.


과연 누구에게 공평이고, 누구에게 불공평인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리고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공정과 공평은 불공정과 불공평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16살이었던 내가 떨어진 그날의 시험은 공정인가 불공정인가? 디자인 매니저로서 시행했던 동료들과의 평가는 공평인가, 불공평인가? 그날의 내가 했던 다짐이었던 '나는 절대적 공정함을 지키며 살 거다.'의 '절대적'이라는 말은 결국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도덕적 잣대의 기준이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게임 참가자 455명의 이유 있는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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