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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헤니 Heny Kim May 24. 2020

1화. 찹쌀 고추장과 조청, 쌀 떡볶이.

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한국. 서울에 돌아온 지 두세달이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하루, 일주일, 한 달의 감각이 돌아왔다. 2019년 다시 마주한 서울은 3년 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잠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숨이 가빠지게 만들었던 서울의 속도는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었다는 듯, 지하철 출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노인과 아이의 속도에 맞춰진 듯 천천히 오르 내리고 자신이 바쁘다고 믿는 사람들만이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닌다.

요리 유학을 위해 떠났던 파리에서 보냈던 처음 2년 동안은 한국 마트에서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어 자주 떡볶이를 해먹었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에는 종종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만든 떡볶이 사진이 올라 왔다. 당시엔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것들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집이 그리운 마음이란 사실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인 부산시 사하구 신평동의 재래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세탁소 옆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떡볶이집이 있다. 엄마가 그 떡볶이집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했으니 적어도 32년은 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맛을 들여온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집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는 떡볶이를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그 집과 똑같은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다는 핑계로 맛의 비법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었다. 한 번은 떡볶이 아주머니에게 비법은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애들 간식 해주게 아주머니가 쓰는 고추장이라도 좀 나눠 달라고 요청하러 갔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속이 좁아 그것조차 거절하더라며 화를 내며 돌아오기도 했었다.

그 후로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떡볶이집의 비법을 알아보고 다니더니, 어느날은 알고 보니 웬만한 떡볶이집들은 고추장을 쓰지 않고 고운 고춧가루를 쓰더라며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김칫국, 명태조림, 오징어 젓갈, 삼색 나물 옆에다 떡하니 떡볶이 내어놓고는 가게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그걸 지켜보던 나는 비밀을 지켜낸 떡볶이 가게 아주머니의 판단이 훌륭했다는 생각을 잠깐이지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초등학생 때부터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만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던 나는 슈퍼마켓에 설탕을 사러 갔다가 설탕코너 옆에 놓인 조청을 보고 그 집 떡볶이 맛의 비밀을 그만 알아채 버렸다. 아주머니가 떡볶이에 진한 갈색의 엿 같은 걸 넣는 모습을 늘 봐놓고도, 나도 모르게 무언가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신비한 비법이 숨어있을 거라고 여겼고, 그 생각이 그렇게도 궁금해했던 그 떡볶이 맛의 비밀을 알아채는 걸 방해해 왔던 것이다.

다른 어떤 곳 보다도 자연스러웠던 그집 떡볶이의 단맛은 바로 쌀로 만든 조청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추장도 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었건 아니건, 쌀과 조청이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쌀떡에 조청을 넣고 만든 새빨간 떡볶이를 먹고 자란 내가 서울에 상경해 처음으로 분식집을 찾아가 주황색 국물의 밀떡볶이를 먹었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이국 땅에서도 나에게 집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었던 맛, 조청 떡볶이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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