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처음 요리를 직업으로 삼기로 했을 때를 기억한다. ‘엄마도 요리로 생계를 꾸려왔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요리로 돈을 벌어 먹고살겠다는 결심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후, 요리사로서 3년, 요리 학교에서 비싼 값을 치루고 낮은 임금을 받으며 팔라스 호텔 레스토랑의 인턴으로 주50 시간씩 달리며 일을 한 지 4개월이 지났을 즈음, ‘그렇다면 이건 누구의 삶이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20대에서 4년이란 긴 시간을 요리사로서 보낸 뒤였다.
가족들이 사는 부산에서 9,285km. 친구들이 사는 익숙한 도시 서울에서 떨어져서 외국인,
아시안, 여성, 유학생으로서 맞는 두 번째 해 생일. 서른이라는 나이로 들어서면서 마침내 살아오면서 내가 주변과 맺은 관계에서 주고받은 영향을 하나하나 뜯어 볼 수 있는 시공간이 생겨났다.
내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었던 나. 나의 선택, 나의 취향이라 여겨왔던 수많은 것들이 대부분 주변에 보이기 위한, 어딘가에 속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 누군가에 의해서 말해진, 나 자신에 의해서 말해진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분갈이 때가 된 식물처럼 성장을 멈추고 한 동안 시름시름 시들다가 뿌리가 뽑혔는지 사정없이 흔들렸고, 엄마가, 가족이, 주변과 친구들이 나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해온 것들을 흙처럼 털어내고 난 자리엔 별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 학교에선 한 접시에 담기는 채소들을 각기 다른 팬에서 조리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채소를 먹어도 각자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주변과 나를 한 데 섞어 요리했었다. 처음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을 땐 내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먼저 지워야 했다. 나는 섞지 않은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 식사를 위한 과일 한 접시
향기가 있는 과일을 마음껏 산다.
각각의 특징에 맞게 잘 깎는다.
섞지 않고 한 그릇에 담는다.
각자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채며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