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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채소 찌기

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by 김헤니 Heny Kim







전에 하지 않던 말을 뱉어 보고,

먹지 않던 채소도 한 번 먹어본다.


프랑스어로 부드러움을 뜻하는

명사들 중에

douceur/두-쐬어/와

mollesse/몰.레-쓰/가 있다.


mollesse는

폭신한데 나약함 옆에 앉은 부드러움을 뜻하는데

douceur는

감미로움과 완만함 옆에 선 부드러움이다.


douceur를 구글 번역기에 넣으면

영어 sweetness/단 맛을 건네는데

내가 아는 douceur는

2. 명사 (맛.향기 따위가) 독하지 않음,

부드러움, 감칠 맛이남, 순함의 mildness이다.


먹고자 하는 채소의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거부감이 들 땐,

끓는 물에 살짝 데쳐도 좋지만

찜기에 올려 뜨거운 김으로 쪄서 요리하면

영양가를 지키면서 감미로운 본래의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지금 내가 쓰는 이 익숙한 언어는

너무 편리한 나머지 생각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제치고 나와선 할 말을 휙 가로채 가버린다.


이전까지 내가 한국말과 맺어온 관계는

내 속에 떠오르는 말을

1. 남을 거스르지 않으려 입을 닫고

2. 1. 을 모르기 위해 알지 않으려는

시도의 연속이었어서 (슬프지만 그렇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뱉어 보려고 애를 쓰는데,

힘 준 말이 독할 때도 있어서

뜨거운 김에 말도 하나씩 올려서 같이 쪄본다.


낯선 말을 하는 이의 조심스러움,

낯선 말을 듣는 이의 성실함으로

전에 하지 않았던 말을, 먹지 않던 채소를

부드럽게 쪄먹은 날에는

해야하는 말을 두-쐬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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