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24시간으로 쪼개진 하루가 반복되어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고 1킬로미터를 걸어서 가는 데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감각이 없어 ‘어디로 가지? 별로 멀지 않네’ 걷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하는 나는 시간과 납작하게 밀착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본다.
주방의 시간은 주문이 들어옴과 동시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밀도로 흘러간다. 레시피엔 완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검정으로 쓰여 있는데 일단 요리가 시작되면 시간은 옅기도 진하기도 한 회색이다. 혼자서 요리하는 것과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것, 30명이서 장단을 맞추어 세 접시를 동시에 나갈 수 있게 만들어 내는 일은 모두 다른 종류의 일이다.
달걀을 익히는 일은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흐르는 반숙은 5분 30초 샛노란 완숙은 8분
보슬보슬한 노른자는 10분을 끓는 물에
끓게 둔다는 사실 외에도
이 달걀이 큰지 작은지
껍질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도가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물이 잔잔하게 끓고 있는지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지
뚜껑을 덮어 압력을 더할지 말지
삶은 후 차가운 얼음 물에 담구어 빠르게 식힐지
남은 열로 점점 더 단단하게 익어가도록 내버려 둘지 등
모든 걸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만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내가 감각하는 시간도 그에 더 가깝다.
어디에 어떤 상태로 누구와 혹은 아무와 있는지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완성하고자 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해야 하는 이야기는 매일 아침 그 모습이 달라져 있다.
그중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날도 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계산하는 일 외에, 새로운 방식과 말하기를 배움으로 인해 이전부터 내 안에 있어온 것을 마침내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마음이 붙지 않는 일은 아무리 해도 익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