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눈을 마주치는 친절한 팬케이크
나는 자전거를 타고 샤혼느 가를 따라 페흐 라쉐즈 묘지 주변을 지나는 중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 결정한 첫 번째 일은 1년짜리 지하철 정기권을 사는 대신 그 돈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지하철 표를 사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의 돈으로 내 몸에 꼭 맞는 자전거를 사는 것이었다. 집 밖을 나섬과 동시에 절도의 표적이 되는 외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갑작스러운 모욕과 멸시를 어느정도 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보다 먼저 외국인으로 살아 본 최에게서 배웠다.
몇 년 전 생활을 완전히 미국으로 옮긴 최를 방문했었다. 우리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따라서 샌프란의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2주간 단 하루도 아무렇게 보내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지 않았기에 매 순간이 새로웠고 흥미진진했다. 말로 꺼내놓고 나면 없어질 것이 싫어서 당시의 충만했던 느낌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세하게 들려주지 않았다. 여행 어땠어? 라는 질문에는 부리또가 끝내줬어, 너무 맛있는 도넛이 있어서 친구가 안 볼때 몰래 두개나 사 먹었어. 꿀과 자스민으로 맛을 낸 아이스크림을 맛 보았는데 환상적이었어! 라는 말들이면 충분했다.
최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다이너에 팬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은 최의 표현에 의하면 하늘에서 침이 튀기듯 비가 오고 있었는데 정면에서 웬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성인 여성이던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전진해 왔다. 그 남자애는 보도 위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모욕에 당황한 우리 두 사람을 거칠게 찢어놓더니 아이들을 모욕하는 말을 몇 마디 뱉고 신이 난 목소리로 깔깔깔 웃으며 사라졌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내가 이 동넬 잘 알았다면 욕이라도 퍼부어줬을 텐데 하는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낯선 동네의 남자애들은 어쩐지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그런 마음으로 산 자전거를 타고 보도 쪽으로 바짝 붙어서 파리 18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어서 점점 분홍색인 하늘이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펼쳐졌다. 짧은 찰나 시야의 오른편에서 한 아주머니가 남편으로 보이는 일행을 뒤로하고 내 쪽을 향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아주머니는 주변의 건물들을 말풍선으로 다 가리고도 남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You are beau-ti-ful!”
그거 알아? 당신은 아름다워. 나는 그 순간에 한참동안 멈춰 있었는데, 자전거는 계속해서 앞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바로 그다음 순간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파리에 도착한 아주 초반에 그런 일이, 낯선 사람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왜 받아주지 않냐던가 왜 돌려주지 않냐는 성냄 없이—나에게 아름답다고 외쳐준 일이 샌프란 모욕의 기억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날 이후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목소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마치 새로운 어린 시절을 가진 것처럼, 나의 새로운 바탕이 된 것이다.
늦은 오후 지하철 입구에서 도둑과 눈이 마주쳐 가까스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던 내 핸드폰은 두 달 뒤 이른 아침 출근길 열차의 문이 닫히던 순간에 다시 도둑맞았고, 근사한 내 검정 자전거는 누군가 내 계산법을 지켜보기라도 했다는 듯 구입한지 일 년이 지나자 밤새 쇠줄을 끊고 훔쳐 가버렸다. 그래도 어떤 날은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사람들에게 밀려서 엉거주춤 계단을 내려가고 있노라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손을 빌려 주었고, 세탁소에 가 처음 보는 기계 앞에서 멀뚱하게 서 있기라도 하면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인상을 잔뜩 쓰고 다가와선 ‘너 뭐야 여기는 처음이야?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따라 하도록 해!’ 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파리에서 지내는 내내 안전하지 못하다는 감각과 낯선 사람들의 다정함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잠깐동안 시선을 나누고 미소를 주고 받는 일에는 점점 더 익숙해져갔다. 근데 그거 알아? 아무 조건 없는 친절을 경험하는 일이 하나 둘 쌓여가면 그동안 내가 친밀함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들 속에 친절함과 배려라곤 코털만큼도 없었다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요일 저녁 6시, 팬케이크를 굽는 일을 끝내고 땀을 닦아낸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하늘의 턱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하철역은 스무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도 역으로 달려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움푹 파인 건물 입구에 서서 비를 피하며 바닥을 죄다 휩쓸며 달려가는 물줄기를 내려다보니 이런 비는 조금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한 쌍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하얀 백발의 노신사가 믿을 수 없이 넉넉한 품의 우산을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의 얇은 에메랄드색 코트는 빗속을 잠깐 서너 걸음 지나왔을 뿐인데도 빗자국이 눈물처럼 진하게 번져서 거의 진녹색이 되어 있었다. 노신사는 내가 말을 할 줄 안다는 확신이 없었는지 눈의 웃음과 고갯짓을 통해 자신이 우산을 씌워줄 수 있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돌려주지 않아도 되지만 좋은 일이 생길지 나쁜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낯선 이의 친절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불쑥 솟아나고 있었는데 밖에선 벌써 내가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흔들리는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알아서 어떻게든 해볼게요.
한참을 기다린 뒤에도 비는 어지간해선 그칠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는 비를 맞으며 역으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로도 사람들 속에 뒤섞여 낯설고 대등한 타인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나누게 되었던 일이,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을 느꼈던 날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일은 내 집 밖을 나서면 외부라는 것을 알아채고, 자신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부일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만 일어난다. 물론 인종차별도 아침저녁으로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는데 그때마다 차별자를 붙들고 당신이 틀렸다고 소리를 쳤더니 나쁜 일들은 시간과 함께 마음에서 사라졌다.
나를 환경에 맞추지 않고, 마비시키지 않는 일이 가능할까? 서울에서 젊은 여자가 낯선 사람들과 시선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눈을 마주치면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되곤 한다. 너에게 나를 똑바로 쳐다볼 눈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지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번갈아 가며 연속적으로 마주할 뿐이다. 마법 같은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팬케익을 굽는다. 잘 구워진 팬케익에 메이플 시럽으로 만든 크림을 끼얹어 눈을 맞춰볼까?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설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지만 낯선 이에게 베푸는 달콤한 친절은 누군가의 삶을 구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