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밀푀유 감튀
‘Qui seriez-vous sans votre histoire?’
당신의 이야기가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던 낯선 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아침부터 의무적으로 틀어놓았던 팟캐스트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이 질문에 나는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귓바퀴를 미끄러져 지나가며 새롭고 얕은 길을 내던 낯선 단어들이 갑자기 무게를 되찾더니 제멋대로 정차한 것이다. 이 질문은 십 년 동안 이어진 심각한 우울증을 어떤 깨달음으로 하루아침에 극복한 미국의 한 영적 지도자의 책 제목이었다. (국내에는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내가 그 질문에 사로잡힌 건 그 질문이 의미하는 바가 어느 쪽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지금까지 당신의 삶을 구성해 온 요소들이 전부 사라진다면 당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일 수 있겠냐는 질문으로도 들렸다.
그 책 안에 나에게 필요한 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그동안 어떤 단어나 문장이 이런 식으로 나의 중력장 안으로 들어왔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그때마다 이 순간들이 나 자신과 무언가 중요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 사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그게 나에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 한 번도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보거나 질문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생각’으로 번역된 ‘당신의 이야기’가 없다면.
당신이 몇백, 몇천 번씩 스스로 반복해온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의 뿌리라고 굳게 믿어온 역사가 최초의 환상에 불과하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일 수 있을까?
모든게 환상이라면,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파리의 요리 학교 페랑디에서 프랑스 요리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배운 이후로는 처음 맛보는 요리를 먹을 때에도 그 기원이나 맛의 비밀을 추측해보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감자 자체의 맛을 살린 요리도 매우 다양했다.
육면체로 모양을 깎아서 삶은 감자, 뽐 샤또
깎여 나온 조각들을 우유에 익혀 버터를 더해 만든 감자 퓨레
감자를 2mm 두께로 썬 뒤 150 ° C에서 한 번, 190 ° C 에서 두 번 튀겨 작은 황금색 풍선처럼 부풀린 뽐 수플레.
감자를 먼저 푹 익힌 뒤 포슬포슬하게 으깬 감자에 밀가루를 조금 더해서 반죽해 삶아낸 뇨끼
으깬 감자와 프랑스 오브락 지방의 톰 치즈(Tomme fraîche)를 반반 섞어 만든 퐁듀처럼 주욱 늘어나는 으깬 감자, 알리고(Aligot)
등등.
그 중에서 뽐 안나(Pommes Anna)는 감자를 일정한 두께로 썰어 동그란 틀로 찍어낸 뒤 한겹 한겹 버터를 발라 차곡차곡 쌓아서 구워낸 요리이다. 뽐 안나를 색이 나지 않게 구워낸 뒤 뜨거운 기름에 튀겨내면 겉은 감자칩보다 바삭하고 속은 퓨레보다 부드러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감자 튀김이 된다. 후추를 잔뜩 뿌린 마요네즈나, 마요네즈에 새콤달콤한 발사믹 크림을 더해 섞은 발사믹 마요를 곁들이면 누구나 얼굴가득 웃음이 차오르는 맛을 낸다. 나는 튀긴 뽐 안나에 밀푀유 감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뽐 안나가 전통적인 형태인 구운 감자 요리인 채로 머물렀다면 밀푀유 감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뽐 안나라는 형태를 우선 거치지 않고서는 밀푀유 감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익숙한 주변 재료의 맛을 최고로 끌어내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일에는 전통의 도움과 파괴, 두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끝이 시작이라는 말처럼, 내가 진행해온 이야기를 끝낼 때에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재료들과 기존의 레시피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얇은 겹을 겹겹이 쌓으면 언제나 근사한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