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헤니 Heny Kim Dec 30. 2020

15화, 뚱딴지 퓨레

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나는 셋 이상의 무리 안에 위치할 때면 늘 긴장해 있었다. 무리 안에 들어서면 힘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방식이 언제나 섞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일대일로 시간을 보내기 전에는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좀처럼 마음을 놓거나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무리 짓지 않으면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다시 돌아오니 이전에 내가 무리 안에서 자처하곤 했던 사람 좋아 보이는 역할을 더는 맡고 싶지 않았다.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진은 그런 내가 본능적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무리 안에서도 나를 대등하게 대해주면서 헤어지는 순간엔 내 손에 뭐라도 하나씩 꼭 쥐여주던 나보다 마음의 품이 넓고 강한 친구다.

도진에 대해 쓰는 게 늘 어려웠다. 그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주변의 친구들이 암 투병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했던 것을 계기로 처음으로 짧은 글들을 쓰게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그의 예전 동료와 인연이 닿아 책 작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그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그를 알아 온 시간에 비해 내가 그 친구를 너무 잘 몰랐다는 사실이었고 또 다른 선명한 사실은 그를 낫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게 기도밖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가 하는 일들을 안다고 해서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제목만 봐놓고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던 책들처럼. 그 사실들을 무마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시장에 나온 채소를 곱게 갈아 수프나 퓨레를 만들어 이태원으로 그를 찾아갔었다. 하루는 둘이서 등산하러 함께 북한산에 갔었는데,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당시의 나는 한동안 방금 알아챈 이야기밖에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가끔 놀라운 일을 접할 때가 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 앞에 곰이 나타난다면, 휘둥그레 놀란 사람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에 급급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사실임을 알리는 데 급급한 것이다. *

중간지점에서 잠시 쉬어가려 멈췄을 때 나는 입을 열어 숲에서 곰을 발견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있잖아, 나 아름다움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 그는 얘가 또 뚱딴지 같은 소릴 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곤 대답 없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잠깐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바람이 부는데 가만한 친구의 얼굴이 맑고 아름다웠다.

그는 앞장서서 능수능란하게 산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혼자서는 한 번도 올라본 적 없었던 험한 바위산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겁이 나지 않을 땐 높고 가파른 바위도 쉬이 넘었지만,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 한 켠 덜컹 겁이 들어서면 금방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가만히 주저앉아야 했다. 내가 얼마나 쉽게 겁을 먹는지, 쉽게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매번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어왔다는 걸 말로 표현 할 수 있었다면, 엉뚱한 소리를 덜 할 수도 있었을까.

목표했던 정상의 바위에 도착하자 그가 준비해온 흰 앙금 도너츠를 나눠주었다. 앙금 도너츠를 먹으면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이 꼭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경사가 이상할 정도로 자꾸만 가팔라져서 나무에 매달려 있다시피 했었는데, 둘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샛길로 빠진 것이었다. 내려가는 길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내가 주춤하자 도진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가 당겨주는 힘에 몸이 가벼워졌다. 도움을 줘야 하는 때에도 오히려 도움을 받은 건 나였다.

산에서 내려와선 내가 만들려고 하는 책의 기획서를 읽어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집중해 읽고 나서,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이런 글은 사람들이 곧바로 알아보기 쉬운 단어들을 사용해서 간략하게 써야해, 좀 이상하게 들려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겪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 있잖아. 그런 말로 정리해야 해. 네가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하나로 쭉 연결되는 것 같아.” … 그렇지만 우리 내면에서 진행되어온 이야기는 하나의 목소리로 쭉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가?

그때 나는 내가 도진이 표면적으로 진행시켜온 서사들은 훤히 꿰고 있었지만, 속에서 살아온 감정들에 대해선 너무 멀리 있어서 잘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친구들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
내가 나여도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너답다고 말해준 사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내가 보낸 편지가 그의 손에 도착했다. 이후 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그래도 네 편지는 전달되었다고 말해주었지만, 그 편지에는 자꾸 이상한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힘들 때 같이 시간을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편안한 애정을 느꼈다는 (게이 친구에게 하나 마나한) 뒤늦은 고백과 함께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 쓰여있었을 뿐, 작별 인사는 전하지 못했다.

2012년의 한여름, 그를 처음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너 같은 분위기의 사람이 좋더라.”고 말해준 그가 내 이름을 붙여준 튤립 구근에선 흰 꽃이 피었다. 다시는 그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물을 기회가 없다는 실감은 아직도 나지 않는다. 곰을 마주쳐서 아름다움에 대해 배운 이후로 나는 조금 변해서 건강을 해치는 몇 가지 나쁜 습관과 생각들을 멈췄고, 시간을 쉽게 보내려는 마음으로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무언갈 하고 있는 사람을 멈추게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진지해야 하는 이야기로는 농담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 발터 벤야민의 ‘휘둥그레 놀란 사실성 제시’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14화, 시나몬롤 아닌 스누두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