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대신 잡초를 뽑다

자락동 방식의 deal

by 해원

왕복 260Km의 거리였다. 남의 볼일을 위해 다녀오기에는 상당한 장거리였다. 토박이인 Mary 할머니께는 익숙한 길이라지만, 시간과 연료의 소모는 다르지 않았다. 나는 지갑을 열며 말했다.

“기름값이라도 좀…”

“NO!” 투박하지만 잘 드는 칼날 같은 한마디와 함께 튕겨지듯 내밀어진 손이 내 지갑을 눌렀다. 벌어지던 지갑의 입이 머쓱하게 닫혔다.

당혹스러웠다. 기름값도 마다하실 줄은 몰랐다. 순전히 내 볼일 때문에 본인 자동차로 3시간 넘게 운전을 하셨는데, 감사 인사 한 마디만 받겠다 하시니…

‘어떻게 해야 하나. 돈으로 말고, 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으신 듯 할머님이 말했다.
.“Okay, then, here’s a deal.”

“아, 다행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떤 제안이라도 좋아. 가혹하고 불공정한 거래라도 상관없어. 나도 Mary처럼 ‘예스!’ 라고 딱 잘라 대답할 거야.” 그렇게 맘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제의를 했다.

“너, 밭일 잘 하잖아. 내가 오후에 시청 앞의 화단 정리를 할 건데, 그 일을 도와주면 어때? Deal?”

그거라면 자신이 차고 넘치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고 흙을 다독였다. 호의를 갚겠다는 마음에 일 잘한다는 칭찬을 몇 배로 더 받겠다는 쭉정이 욕심이 얹혀 있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면서 명랑하게 말했다.

“어머나 감사해라. 풀 뽑아주고, 김 매 주고, 정리정돈 해 주는데, 이렇게 귀한 비까지 내려 주시니 꽃들이 정말로 행복하겠어요.”

Mary가 나를 보며 웃었다. 축축한 어깨를 산뜻하게 건조 시키는 더 없이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정말로 일을 잘 한다는, 감탄 섞인 칭찬도 연신 펼쳐 주셨다.

일이 끝나갈 무렵, 색깔 없는 진심을 담아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 백인들만의 동네에, 근원도 모르는 유색인이 들어와 사는데도… 차별 않고 잘 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게 인종이니 차별이니 하는 말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입 밖에 내기가 껄끄러워 띄엄띄엄 말을 잇는데, 할머니가 펄쩍 뛰듯 말을 끊으셨다.

“차별을 왜 하니? 너가 나쁜 짓을 하니, 마을에 피해를 주기를 하니? 동네 일에 협조도 잘 하고, 마당에 꽃도 가득 피워서 눈을 즐겁게 해 주는데, 그런 사람을 누가 싫어해? 우리는 네가 여기 와서 정말로 좋아.”

나는 거의 울컥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었던 내가 이제는 자락동 토박이인 Mary의 이웃이라는 안도감이었다. 나의 마당에도 언제나 할 일이 많았지만 교회 가족들과 더불어 공동체의 정원을 가꾸고, 노동이 불가한 이웃의 마당 일도 돕고, 행사나 모임에 기꺼이 참여하여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것으로 받은 후한 대가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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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태는 작은 힘

Mary의 환대는 나를 정서적으로 안착시켰지만, 사회적인 신뢰는 또 다른 증명이 필요했었다. 운동 삼아 청소라도 해 볼까 하고 일자리를 알아볼 때였다. 학교나 기차역처럼 공공성이 강한 곳은 물론, 동네 상점인 달러 제너럴에 지원할 때도 엄격한 신원 조사와 약물 검사를 거쳐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담당자는 과하다 싶게 경탄을 했다.

"와, 너는 정말 눈처럼 깨끗하네(clean as snow). 이렇게 깨끗한 배경(Background)을 가진 사람 찾기 힘들어." 그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되어 나도 농담처럼 받았다.

“이런 시골에 내리는 눈이니까 깨끗하겠지. 그리고 이런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다 깨끗할 것이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보니 평화로운 이 시골 마을조차 약물 문제로 얼룩진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도시만의 폐단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약과의 전쟁이 정치적 공약이 될 법도 했다.


이미 부동산의 신원조회로 어느 정도 인정은 받은 터였지만, 그 약물검사로 인해 나는 참 괜찮은 주민이라는 걸 재인정 받은 셈이었다. 범죄경력 없고, 약물이나 담배 같은 것 하지 않는 깨끗한 사람, 정직하고 성실하여 무료한 삶을 사는 이웃이라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나도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지만 특정한 사람들에 한정되어 이 동네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숨기자는 게 아니라 굳이 알게 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사람들은 내가 인종차별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산다고 하면 좀처럼 믿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이방인은 반드시 고통받아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내가 누리는 이 낯선 자유를 시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유난히 예민한 내가 백인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차별 의식을 감지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실체 없는 관념적 차별에 내 소중한 삶이 지배당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차별의 본능이 존재한다 해도, 그 차별의 이빨이 나를 향해 으르렁거리지 못하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공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었다. 세금이나 공과금 납부는 가급적 미루지 않았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에는 기를 쓰고 참여했다. 대통령이나 주지사 선거는 물론, 작은 마을의 시장을 뽑는 투표장에도 나는 늘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들과 똑같은 의무를 짊어지고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동료’ ‘시민’ 이라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재작년 시장 선거 때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긴급한 사정으로 마감 직전에 가까스로 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개표 결과가 두 후보의 동점이었다. 결국 자락동 법칙에 따라 주사위를 던졌고, 나의 한 표를 받은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했다.

"세상에, 내가 기권했으면 리타가 질 뻔했잖아! 내 한 표가 이렇게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다니!"

가까운 친구에게 들떠서 한 내 얘기가 시장의 귀에 들어갔다. 그 후 나는 시장의 친구가 되었고, 시장은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이제 자락동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이거나 유색인이기 보다는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이웃이었다. 내 다친 발의 치료를 위해, 그리고 내 고장 난 차를 고치기 위해, 몇 시간씩의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 이웃들이었다. 대가를 받는 대신 손해가 분명한 '딜을 제안하는 그들을 보며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지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내 한 표의 무게를 존중해 시장도 친구가 되어주는 동네, 내가 하필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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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가족들, 그리고 교회학교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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