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이 만든 인질

왜 하필 여기?

by 해원

“하필이면 왜 이런 곳이야?”

아직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그렇게 묻는다. 전에는 이유를 몰라 얼버무렸고, 지금은 이유가 너무 많아 그저 웃는다. 웃음보다 나은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유 없이 흘러 들어온 내가 얼마나 버틸까 내심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제 '탈출'을 권하는 것으로 걱정의 방식을 바꿨다. ‘이런 골짜기에 찾아 들 사람은 너 말고 없다. 산이 돌아앉아 있어 산촌도 못되고 바다는 외국보다 멀어 어촌도 못되는 이 어정쩡한 깡촌을 참 용케도 찾았다. 너니까 찾은 거다...’ 이렇게 칭찬처럼 들리기도 하는 핀잔 뒤에는 어서 나오라는 얘기가 따라나왔다.

그렇긴 하다. 동쪽에 높이 솟은 두 개의 고개는 나를 가두는 성벽이 되었고, 서쪽의 아득한 초원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워버렸다. 예전에는 사람이 지나다니지도 않던 곳, 유배지로도 쓰이지 않던 곳이었다. 광산이 생기고, 석탄 나르는 기차와 철길이 생기면서 동네도 생겼다. 약간 번성해 가던 동네는 몇 개의 광산이 폐쇄되면서 다시 침묵하는 늙은이가 되어갔다. 화려한 도시문명의 맛을 아는 사람들에겐 유배지로 보일만한 곳이긴 하다.

몇 시간만 달려 나가면 근사한 곳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일곱번의 여름과 겨울을 지내면서 이곳에 살아도 될 이유, 살아야 할 대답들을 찾아갔다.

나는 이 동네에 인질로 잡혔다. 사랑스러운 말썽쟁이들이 나를 동네사람들에게 인줄로 내 주었다.

사건은 울타리 틈새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듯한 두 쪼꼬미들이 무슨 공모를 그렇게 치밀하게 하는지, 틈새를 막고 걸쇠를 채우는 나의 노력은 매번 무력화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알아내려고 일을 나가는 척하다가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 뒷마당 울타리 구석으로 달려갔다. 날씬한 콩이가 머리로 철망 귀퉁이를 들어 올리자, 통통한 똘이가 제 머리를 디밀어 출구를 넓혔다. 먼저 빠져나간 똘이 뒤를 콩이가 잽싸게 뒤따랐다. 녀석들은 신바람을 내며 무작정 내달렸다. 거침없는 질주였다.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던 틈새였다. 그걸 막은 며칠 후에 다른 구멍이 생겼고, 그걸 막자 또 다른 길을 냈다. 토끼같은 녀석들의 협동작업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녀석들이 자유를 찾아 가출할 때마다 나의 유배지는 비명 가득한 전쟁터가 되었다. 온 동네 골목마다 녀석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 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날, 멀지 않은 이웃집의 창문이 열리며 60대로 보이는 여인이 물었다.

“강아지들? 하나는 희고 하나는 회색…?”

“맞아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창문이 덜컥 닫혔다. 멍하니 서 있을 틈도 없었다. 곧장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튀어나왔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내가 그리로 가 볼 테니 너는 골목을 계속 찾아봐.”

여자의 이름은 제니퍼였다. 그녀가 검은 벤에 올라 시동을 걸자 남편 딘이 집안에서 나왔다.

“당신은 트럭을 타고 다녀봐.”

제니퍼의 벤이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자 딘의 트럭도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더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나갔다.

아이들의 탈주는 이웃들의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딘과 제니퍼 부부를 필두로 집에 있던 이웃들이 나서 주는 따뜻한 전쟁이었다. 수색은 그들의 몫이 되고, 나는 언덕 위로 올라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는 '인간 확성기'가 되었다.

트럭에 실리는 두댕.jpg
트럭위 신나는 똘콩 .jpg
트럭에 실려오면서도 즐거운 말썽쟁이들

아이들은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다.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 가출하는 즉시 전화가 걸려오거나 메시지가 들어왔다.

“강아지들, 학교 앞 놀이터에 있더라.”

비교적 안전한 장소이면 메시지로 알려오고, 도로 옆이나 철길 가까이 있으면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애들은 아무나 따르고 좋아하는 순둥이들이지만 내가 없으면 누구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는 영악한 것들이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뱅글뱅글 사람들의 손길을 피했다. 좋아하는 간식을 내밀면 다가가 낼름 받아먹고는, 잽싸게 뒤로 물러나곤 했다. 잡히지 않을 만큼의 딱 세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는 생글생글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그곳에 당도했을 때는 이웃집 강아지들의 간식 봉지가 비어 있기 일쑤였다.


나의 신분을 의심하며 서류 뭉치를 뒤적이던 이웃들이, 이제는 내 강아지들을 찾기 위해 트럭과 벤의 시동을 건다.

더 이상 내 국적을 궁금해하지 않으며, 내가 말하지 않는 과거의 비밀조차 알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동네를 헤매는 말썽쟁이 콩이와 똘이, 그리고 자신들의 Sister가 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뿐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곳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제 나는 환한 웃음으로 대답할 수가 있다. 이곳은 나의 유배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가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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