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풍경

by 해원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약간 흐림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였다. 고요했다. 눈을 떠도 사방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을 것이었다.

겨울이다. 문들은 모두 닫혀 있고,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틈새마다 봉인되어 있었다. 지붕이나 지축을 흔들 만큼 큰 소리가 아니라면, 바깥의 소음은 좀처럼 스며들지 못할 적막한 새벽이었다.

여름의 소리들을 기억해 보았다. 창밖의 살구나무와 사과나무 사이를 오가며 재잘재잘 아침을 열던 작은 새들: 핀치, 블루제이, 참새, 비둘기... 그들의 지저귐을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해도, 나의 강쥐들이 짖는 소리처럼 정겹고 익숙해진 노래들이었다. 지금 창문을 열어 둔다면, 추위 속에서도 즐겁게 인사를 나누는 귀요미들이 분명 있을 터였다.

나는 어두운 방 안 침대에 누워서도 창밖의 미소짓는 나무들과 조잘거리는 새들, 살랑이는 바람결을 볼 수 있었다. 자락동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이 내게 선사한 특별한 감각이었다. 나는 이제 자락동의 호흡을 눈으로도 들을 수 있고 귀로도 볼 수 있는, 자락동의 숨결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사랑일 것이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다른 세상에 있어도 들을 수 있는 것, 이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나의 집은 내가 사랑으로 창조한 나의 세상이었다. 내 손으로 개척하고 다듬어 놓은 나의 우주였다. 처음 이 집을 샀을 때는 황폐한 공터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낡은 벽돌 건물 하나였다. 잡초마저 주눅이 들어 보이는 황무지 같은 앞뒤의 마당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았다.

친구인 Y의 남편이 기계를 가져와 군데 군데 갈아엎어 주었다. 앞에는 꽃밭을 만들고 뒤에는 텃밭을 일구어 꽃씨와 야채씨를 뿌렸다. 비로소 황무지에 생명의 숨결이 감도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게 차 오르던 날이었다.

잡초들을 걷어내고 잔디를 앉히기 위해 땅을 대여섯 번은 족히 갈아엎었을 것이다. 날이 밝기만 하면 밖에 나가 풀을 뽑고, 잔디씨를 뿌리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넓은 뒷마당은 아직도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지만, 처음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이웃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마당’의 후보로도 뽑아 주었다. 사람들은 마당에 만개한 꽃들을 구경하려고 발걸음을 멈추었고, 지나가던 자동차들은 속도를 줄이고 창문을 내렸다.

도라지 꽃을 피우는데는 3년이나 걸렸다. 오래 기다려서 더 정이 간다.

마당에서 자라는 나의 나무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선재나무, 찬식나무, 춘자나무, 그리고 진이나무…내가 사랑하는 고향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그들에게 다가가 쓰다듬고 껴안고 속삭였다.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며 즐거운 얘기도 나누었다. 부디 잘 자라달라고 응원도 했다. 나무들은 신기하게도 제 이름의 친구들을 닮아갔다. 선재나무가 특히나 그랬다. 남달리 키가 커서 고민이었던 그녀처럼 나무는 하늘을 향해 정신없이 뻗어 올랐다. 위로 자라는 대신 옆으로 자라라고 가운데의 원가지를 잘라냈지만, 하늘 향한 그녀의 발돋음은 멈추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유연하고 날렵한 그녀인지라 자락동의 쎈바람에도 부러지지는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이름값을 했다. 튼튼한 시골 아이처럼 건강한 친구들은 내게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아, 그렇지 못한 나무들도 있었다. 뒷마당에 나란히 심은 두 그루의 사과나무였다. 하필이면 진이와 정아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온갖 정성을 다한 보람도 없이 병은 점점 깊어만 가다가 기어이 말라버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슬프고 속상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볕이 잘 들지 않은 구석에 심은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볕 잘 드는 위쪽에 살구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었다. 그게 벌써 3년, 아니 새해가 지났으니 4년이 되었는데, 탈 없이 자라는 걸 보면 자리 탓이 분명한 모양이었다. 다시 진이라고 이름 붙인 저 나무가 이번엔 제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이 마음을 진이나무는 알까?


선재나무: 서너살 때 원줄기를 자른 모습과, 그래도 위로만 커 가는 오늘의 모습

눈을 뜨고, 스탠드 위 전화기를 집어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4:09'라는 굵은 숫자가 떠올랐다.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이라 적혀 있었다. 새해 아침이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지만 오늘은 빛살 하나가 더 많아진 해가 뜰 것 같았다. 빛살이 더 많은 태양은 아무래도 따스함도 더 할 것 같았다. 아직 해가 뜨려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나와 내 강쥐들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늙으면 초저녁 잠이 많아진다는데, 나는 타고난 늙은이처럼 늘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아이였고 청춘이였고, 늙은 아이였다. 그렇게 타고난 늙은애는 좀처럼 낮잠을 자는 일도 없었다.

"왜 낮에 자노, 어데 탈이 났나?"

어쩌다 낮잠을 자면 엄마는 어린 내 이마를 짚으며 걱정하셨다. 그랬다, 탈이 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낮잠을 자는 일이 없으니까.

요즘도 혹 감기 기운이 있어 낮 시간에 약잠이라도 들면 이마에 닿는 엄마의 손길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데 아프나?' 근심스러운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늙은이로 태어나 아이가 되어가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사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건강에도 좋고 시골생활에도 좋은 것이었다. 자락동 여름의 오전 네시는 어둠 한자락 남지 않아 대낮처럼 환했지만 아직 열기가 깨어나지 않아 선선한 아침이었다. 밖에 나가 일 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 내게는 하루 중 일의 능률이 가장 높아지는 아침이었다.


새해가 열리는 오늘 아침은 몸도 마음도 유난히 상쾌했다. 어제 대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도 깨끗한 것으로 바꾸고 샤워까지 하고 잠 든 때문인가 싶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섣달 그믐이면 반드시 대청소를 했는데, 그것은 가장 우선시하는 새해맞이 행사였다.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연명하던 그 때의 사람들에게 새해는 간절한 기원이었다. 아직도 뚜렷한 전쟁의 상처들,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추위를 지는 해에 실어보내고 싶었던 경건한 의식이었다. 가난과 고난의 때를 털어내고 닦아내며 내일 떠 오를 새로운 해는 부디 따사로운 삶의 빛이 되기를 기원하는 신성한 제례였던 것이다.

알레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주 먼지를 털어내는 편이지만, 어제는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붙잡고 더 요란스레 먼지를 털고 꼼꼼하게 쓸고 알뜰히 닦아냈다. 오늘 아침의 특별한 개운함은 그 유난한 청소 덕분일 수도 있겠다.

나는 바삭바삭한 느낌의 깨끗한 이불 속에 누울 때면 내가 솜사탕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른한 수면의 물레가 자아내는 포실포실한 솜사탕, 또는 달콤한 꿈사탕이 되어가는 듯한 그 느낌은 정말로 좋았다.

그리고 언제부터 인가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 설레는 즐거움이 되기 시작했다. 잠이 드는 것은 현실을 떠나 꿈으로 들어가는 하얀 문을 여는 일이었다. 루시와 형제들의 옷장문이 나니아로 드나드는 통로인 것처럼 나의 잠은 기쁨과 행복이 자욱한 꿈의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잠에서 깬 몇 초 후면 꿈의 내용은 신기루처럼 사라지지만, 그 안에서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은 오래 머물렀다. 꿈의 문 밖까지 따라와 나를 괴롭히던 예전의 악몽들은 자락동의 바람이 날려버린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꿈의 사형장, 꿈의 사후세계로 보내버린 것 같았다.

아직도 가끔 찾아오는 불면증은 가장 반길 수 없는 과객이지만, 나는 그를 하얀마녀 대신에 백설이라 불러주었다. 자락동에는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흰눈처럼 귀한 손님이 되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불면의 밤은 정말로 귀한 손님처럼 점잖게 변해갔다. 그를 쫒아내려고 하는 대신 책을 골라서 읽기도 하고 머리에 떠 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써 보기도 했다. 게임을 하는 밤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백설은 뒷걸음질 치고있고 꿈세계의 하얀 문이 열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불면증도 예전의 악몽처럼 아주 떠날 것이었다.


모든 것이 축복이다. 잠을 자는 것과 잠을 깨는 것, 꽃을 심고 꽃을 따는 것,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 내 멍뭉이들의 까만 시선과 살랑대는 꼬리를 보고, 부드러운 아침의 빛을 느낄 수 것... 모두가 축복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뭐든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자락동에 드리워진 고요와 평화는 더 할 나위없는 축복이다. 자연을 통해 내게 주신 창조주의 크나 큰 사랑이다. 내가 나이를 들듯이 그 분의 축복도 나이가 들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새해의 기쁨과 즐거움은 작년의 것 보다 더 성숙한 것이기를 기도한다. 믿으려 한다.


텃밭이 준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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