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보다 한국어가 어려운 이유

뜨거운 동포애와 따뜻한 이웃의 정

by 해원

“정신 나갔지, 그 나이에 돈을 벌어야지 무슨 공부여!”

대학 캠퍼스 시계탑앞에서

50 줄을 탄 내가 대학에 다니는 걸 도무지 이해 못하던 어느 동포의 충고였다.

“공부가 밥 먹여줘? 배운 것 많아도 돈 없으면 아무도 안 알아줘.”

나 잘되라고 한 소리라지만, 그것은 내게 끓는 물이었다.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튀어 심장에 화상을 입히는 뜨거움. 외국어로 사투를 벌이는 만학도에게 필요했던 건 질타의 끓는 물이 아니라, 주눅 든 마음의 얼음을 깨 줄 응원의 작은 송곳 하나였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같은 민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말이 늘 같은 뜻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동포들이 사용하는 나의 모국어는 너무 투명해서 숨을 곳이 없었다. 건더기 하나 없이 맑은 국물 같아서, 상대의 의도를 나 좋을 대로 해석해도 될 오해라는 조미료나 관용이라는 고명 하나 얹을 틈이 없었다. 때로 무방비 상태로 발가벗겨져 마음의 추위로 떨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같은 뜻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화는 오해와 불신도 쉽게 끼어든다. 집안에 누가 괜찮은 직업을 가졌다 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다거나 하는 말이라도 나오면, ‘우리 오빠는 국회의원이다’ 라든가, ‘내 마누라의 오빠는 판사라요’ 하는 따위의 말들이 가시 돋은 조약돌처럼 날라 다녔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낯이 얇아서 못한다. 어지간히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면 글쟁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작가면 다냐'라며 무례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던져진 그러한 모국어들은 내 영혼을 슥 베고 지나가는 작은 흉기였다. 교정할 것 없는 유창한 그 말들 앞에서는 작가적인 해석의 방어막이나 좋아하는 색깔을 입혀 볼 완충지대 따위는 없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한두개의 상처가 수백개의 위로보다 크고 강하게 부딪혀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 연극도 보러가고 맛집도 찾아다닌다

역설적이게도, 서툰 영어를 쓰는 나와 미국인 이웃들 사이에는 그런 상처들이 생기지 않았다. 이웃이 사용하는 외국어는 내게 맑은 국물이 아니라 자욱한 안개 같았다. 그 안에서는 서로의 형상이 흐릿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모호함이 오히려 나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보호막 안에서는 한 두개의 위로가 수 백개의 상처보다 크고 든든한 것이 되기도 했다.


사실 자락동 이웃들이 처음 내게 보여준 밍밍한 맛의 예의는 낯선 이를 향한 신앙적 환대였다. 각자의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살아가는 저들은, 타인들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기보다 침묵으로 존중해 주는 편을 택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누구의 세계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신앙적인 조심스러움, 내 서툰 영어와 낯선 문화를 비웃고 외면하는 대신 인내하며 도와주는 자세로 내게 다가왔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나의 서툰 외국어는 넉넉한 오역의 자유를 부여했다. 누군가의 말이 칼날일지라도 내 미숙한 영어 실력은 그것을 무딘 연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내 영어가 모국어처럼 능숙하고 익숙한 것이었다면, 자락동 이웃들에게도 말의 상처를 입어 끙끙 앓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직은 비명을 지를 만큼 아픈 상처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서툴고 무딘 언어가 오히려 안전한 방패가 되어주는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말이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유창한 무례보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조심스레 서로의 감정을 살피는 서툰 예의가 더 편안할 때가 있다. 내 인생을 다 아는 양 ‘정신 나간 짓’ 이라 핀잔을 주는 동포들과, 자칫 냉담한 느낌의 ‘Non of your business’라는 말로 거리를 지켜주는 내 이웃들 사이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었다. 동포애는 뜨겁고 투명하지만, 자락동의 정은 따뜻하고 불투명했다. 뜨거움은 화상을 남길 수도 있지만, 따뜻함은 그저 온기로만 남는다. 자락동의 상처 없는 평온은 바로 그 적당한 온도의 틈새에 있었다.

열공 축구장: 50 = 20 페인트 볼 게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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