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기도가 하얀 색깔의 동그란 모양이기를 원한다

by 해원

“기도할 게요.”

가족 중 누군가 해외여행을 한다는 지인의 얘기에 습관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니, 하지 마세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이었다.

'나중에 제가...' 라는 말이 이어졌지만, 흠뻑 젖은 한지위에 그려지는 물감처럼 형체도 의미도 흔들리는 얘기로 번져나갔다. 젖기 전에 찍은 한 방울의 의미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기도하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건넸다. 아니다, ‘습관처럼’이 아니라 ‘습관이 된’ 말이라는 게 맞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무해하고 따뜻한 위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웃음처럼 많이 줄수록 좋은 것이라고도 믿었다. 그러나 그걸 마다할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목요일의 모임을 여간해서는 거르지 않는다. 마음 맞는 교인들 대여섯 사람이 모여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중보기도를 드리는 정규모임이었다. 그 모임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기도였다. 모임의 규칙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반드시 지켜지는 신성한 약속이었다.

그 모임은 내가 마음을 열고 타인들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읽고, 쓰고, 듣기에 치중하는 내가 그곳에서는 남들에게 내 말을 많이 들려주기도 하는 자리였다. 공상과 상상과 회상으로 채워지는 내 침묵의 시간들이 그곳에서는 사실을 말하고 현실을 공유하는 대화의 장으로 전환되었다.


온전히 혼자인 내게는 입술을 열고 소리내어 말 할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친지들과 주고받는 전화통화가 아니면 두 강쥐들에게 하는 내 일방적인 말이 거의 전부였다. 흔히 하는 우스개소리처럼 ‘입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었다.

아마 나는 그 때문에 기도하기를 좋아한지도 몰랐다. 아침 저녁 소금물 가글을 하듯, 아침 저녁 입을 열어 감금돼 있던 내 언어들을 풀어놓아 주는 것, 좋은 습관이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 그런 게 나의 기도인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책임감이나 사색 없이 습관처럼 내뱉던 때도 있었다. 가볍게 약속하고 쉽게 잊혀졌던 기도 제목들이 어느 날 부표처럼 두둥실 떠 올라 집채 만한 납덩이로 나를 찍어 누르던 때가 있었다. 그 무게에 숨이 가빠 리스트를 만들고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가볍게 뱉아낸 약속을 무게 있는 책임감으로 되삼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랬음에도 내 기도는 여전히 가글같은 것 그대로였나 보았다. 아침 저녁 쿨렁쿨렁 입 안을 헹구고 소리 나게 뱉아내는 짭짜름한 소금물. 아니 어쩌면 소금도 들어있지 않은 맹물 양치 같은 건 아니었나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무색의 행위로 간주되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의 온도를 따라가다 보니 기도에도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온과 위로를 바라는 따뜻한 색깔과, 용기와 희망을 기원하는 강렬한 색깔의 모든 기도에는 나름의 모양도 있었다.


“하지 마세요."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 기도의 모양과 색깔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여태껏 나는 모든 기도가 밝은 색의 둥그런 모양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도는 간절할 때 꺼내 쓰는 무거운 책임의 어두운 색일 수도 있고, 때로는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아 부담이라는 각을 지닌 세모나 네모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거절당한 기도는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버리거나 외면 당할 기도는 없어야 하겠기에, 그의 말을 거두어 내안에 머물게 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버린다고 버려지는 건 아니다. 더 마땅한 주인을 찾아 투명하고 거룩한 기도로 탄생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것을 내 안에 머물게 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마음의 바닥을 더 깔끔하게 닦아 내고 무형 무색의 기도로 피워올릴 수 있도록 다듬어 보기로 했다.

때로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불꽃 같은 기도보다 낮은 발치에 깔려 소리 없이 스며드는 안개 모양의 기도가 더 뜨거울 수도 있으니까, 그가 현재 걷고 있는 흙길의 먼지를 잠잠히 가라앉혀 주는 뿌연 물안개 색깔의 기도가 태양보다 밝게 빛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저 맑은 물 잔잔한 호수가 되자 했다. 자욱한 물안개로 가만히 스며드는 나즈막한 기도가 되자 했다.

그의 거절은 잠시 나를 멈춰 세웠지만, 동시에 나를 정화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기도를 건네려고 하기보다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들키지 않는 기도, 생색나지 않는 응시의 기도를 연습할 생각이다.

가장 고결한 기도의 색깔과 모양은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또는 그 모든 것들을 말끔히 비워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갓 찍어낸 순백의 도화지 위에 사심의 모서리가 없는 온전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특히 남을 위해 올리는 기도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내 기도가 꼭 그런 색깔과 모양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아지들의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