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눈송이, 천 개의 나부낌

결빙과 해빙 사이, 우리라는 저마다의 결정체

by 해원

무르익은 겨울의 허세가 점점 기세를 높인다. 휘이~ 휭! 수만 개의 바람이 동시에 휘파람을 불며 허공의 눈송이들을 멋대로 흩어놓는다. 갈팡질팡 어지러운 곤두박질을 치면서도 기어이 바닥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푸르름을 노래하며 왁자하게 웃어대던 빗방울들의 결빙은 여름의 소리마저 응고시킨 백설이 되어 침묵한다.


가끔, 나를 발견한 듯 눈송이들이 뱅글뱅글 나부껴 와 내 얼굴을 만진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창이다. 실망한 눈송이가 눈물이 되어 유리창에 눈물자국을 만든다. 그러나 나는 눈물 너머에 나부끼는 자욱한 눈송이들을 응시하며 창조의 신비를 곱씹는다.

셀 수 없이 많은 저 눈발들이 각각 다른 모양의 결정체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커다란 느릅나무의 빼곡한 이파리들이 모두 다른 모양이고, 80억 인간의 생김새와 지문이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도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신을 앞세우지 않고도 그것들이 이해되는 사람들도 못지않게 놀랍다.


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 가운데 꼭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자동차로 누비고 다녔던 드넓은 미국의 산야도 똑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생김새만 그런 게 아니다. 호흡하는 것들의 내면들도 그렇다. 인간의 사고나 관념, 천성이나 성격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아보여도 온전한 신의 뜻으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다 빈약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학문적 무지와 신앙의 미숙함은 여전하다.


어릴 적 내가 배운 세상은 모두 같은 마음들의 집합소였다. 기쁘면 같이 웃고 슬프면 함께 우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과 소외를 의미했다.

“사람 마음 다 똑 같지 뭐.”

그런 말이 귀에 새겨져 있었던 나는, 사람의 마음이란 모름지기 같거나 비슷해야 한다고 믿으며 자랐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던져진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유유상종의 굴렁쇠를 고집스레 굴리고 다녔다.


그러나 수 십년의 외국생활은 내게 엄혹하고도 아름다운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저 눈송이들이나 느릅나무 잎사귀들처럼 인간들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생김새와 지문이 다르듯 마음 또한 결코 같을 수 없으며, 그 어긋나는 결들이야말로 창조주가 빚어낸 절대적 아름다움이라는 진리였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어울려 제 각각 다른 모양의 결빙과 해빙을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것이 진짜 세상살이라는 것을 나는 이 먼 타국에서 배워가기 시작했다."


90년대 이전에 건너와 자리를 잡은 동포들은 대체로 남보다 잘 나거나 특별했던 과거를 상기하려 한다. 소위 한국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American Dream의 부푼 가슴으로 건너온 그들은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국에서의 잘난 사람이었던 추억을 부여잡고, 백 배는 큰 이 땅에서 이백배는 더 잘 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땀을 아끼지 않았다.

그 수단으로는 세탁소나 미용재료상이 가장 많은 것 같고, 주유소 식당 편의점 또는 마켓을 경영하는 한인들도 많아 보였다. 그러나 어떤 분야의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같아 보였다. 대부분 공휴일 없이 일터를 오픈했고, 부부가 함께 나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했다.

최선의 노력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받기 마련이었다.


내가 본 적 있는 한인타운들은 모두 깨끗하고 고급스러웠다. 아름다운 저택에 값비싼 승용차들을 소유한 동포들을 보면 벅차고 자랑스러웠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른들을 보면 존경심도 차올랐다.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대기업에 발탁되는 많은 2세들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의 긍지와 자부심도 느꼈다. 진심 고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포들 속에 어울려 살지 못했다. 30년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꿀벌같은 동포들을 닮지 못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박쥐처럼 겉돌았다.

카드 같은 눈동네, 우리 동네


이민 초창기의 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한심한 재주가 있었다. 어렵사리 장만한 고급주택이나 비싼 자동차 따위에 감동하지 못하는 맹한 구석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집들이에 초대된 손님들은 아름다운 실내장식과 여러 개의 큼직한 방들을 둘러보며 ‘아이고, 좋다!’ 라든가 ‘참 부럽네요!’ 따위의 감탄과 찬사를 보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나는 감탄의 표정도 찬사의 말도 건넬 줄 몰랐다. 몹시 흡족하고 행복해 보이는 주인의 기분을 되려 망쳐 놓기 일쑤였다.

“아니, 이렇게 큰 집이 왜 필요하세요? 두 분은 맨날 가게에 나가 계시고 자제분들도 전부 객지에 사는데요. 좋은 집에서 소처럼 사는것 보다 작은 집에서 즐겁게...”

집주인의 눈초리가 구부러지고 객들의 표정이 민망하게 변해도 아둔한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절거렸다. 마흔살을 넘긴 철부지의 계속되는 만행은 동포들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자동차나 명품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나는 벤츠나 기아나 렉서스나 현대나 같아 보이고 차이점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명품의류나 액세서리들을 보는 눈도 없어서 한껏 부푼 여인의 자존심에 바람을 빼 놓고 만다.

내게 있어 자동차는 다만 움직임의 수단이고 몸에 걸치는 것들은 신체의 보호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물론 나도 아름다워 보이고 싶고 그리 보이려고 노력도 한다. 그러나 값나가는 것보다는 부담이 적은 것을 선호하는 궁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 왜 그렇게 살아?”

헌 옷 가게에서 산 옷을 입은 내게 동포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누가 입던 것인지도 모르는 걸 찜찜해서 어떻게 몸에 걸쳐?”

그러나 나는 그런 핀잔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누군가 몸에 맞지 않는다면서 건네주는 헌 옷도 고맙게 받는다. 내게 잘 맞으면 진심 고마운 마음으로 즐겨 입는다.


나는 가급적 한국제품들을 애용하려고 했다. 자동차, 컴퓨터, 전화기, 세탁기, 냉장고 등 이제 미국에서도 구할 수 없는 한국산은 없다. 품질 또한 최고의 대열에서 어깨를 겨룬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한국산은 열등한 제품이었다. 내가 큰 맘 먹고 장만했던 현대 아제라는 사흘이 멀다하고 문제를 일으켜 써비스 센터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 차를 샀던 동포들의 애국심은 실망과 원망에 덮였다. 나는 또 오지랖을 흔들었다. '이건 일종의 희생이고 애국이다. 그럴수록 우리 제품을 많이 팔아줘야 개발을 할 수 있고, 다른 나라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렇게 국산을 고집하며 미국인친구들에게는 과장되게 선전도 했다. 나는 그걸 애국이라고 믿으며 주변의 동포들에게 은근하고 성가시게 강요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나도 조금은 성숙해진 모양이다.

국산품을 애용하고 한국을 알리려 노력하는 것만 애국이 아니라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애국이라는 걸 깨닫는다. 좋은 집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부요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그리하여 동포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애국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완연히 다른 모양으로도 살고 끼리끼리 닮은 모양으로도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빚은 오묘하고 경이로운 세상의 참모습이며, 그 세상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을 배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삶과 어쩔 수 없이 견디는 빈곤의 삶이 함께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차별하지만 창조주의 사랑은 그저 공평할 것으로 믿는다.


바깥에는 아직도 천개의 눈송이들이 천개의 나부낌으로 전능하신 그 분을 경외한다. 오늘은 나도 나부끼는 눈송이가 되어 하늘의 길목에서 춤추고 싶다. 그러다 곤해지면 따스한 그 분의 품에 내려앉아 포근히 쉬고 싶다.


개신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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