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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쉬는 법을 모른다.

카르페 디엠의 재해석: 현재를 붙잡거나 즐기거나

by 김호빈

현재를 붙잡아라. 오늘날 카르페 디엠은 움켜쥐는 행위에 방점을 찍는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불확실하니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나간 것에 매몰되지 말고 물음표 그 자체인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다. 꽉 붙잡고 충실히 노력하라, 놓치면 뒤처지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니.


위로를 좀 받고 싶어서 카르페 디엠을 검색했는데 되레 절망감만 들었다. 현재를 붙잡으세요, 현재에 충실하세요, 현재가 그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마세요, 현재에 뭐라도 하세요. 노력, 노력, 노력, 노력. 카르페 디엠은 끊임없는 뜀박질과 채찍질, 생산성 강박, 자기 착취 등을 강변했다.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일이나 공부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범주에는 휴식도 포함해야 한다. 카르페 디엠의 기원을 찬찬히 짚어 올라가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에서 유래했다. 호라티우스는 로마 제국이 마침내 '팍스 로마나' 시기에 접어들어 평화를 맞이하자 카르페 디엠을 설파했다. 그전까지 수백 년 동안 전쟁을 겪어온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은 이렇게도 불린다. 현재를 즐겨라, 다시 전쟁이 들이닥치기 전에 일단 좀 쉬어라.


무수히 반복되는 전쟁과 평화. 그 속에서 로마 제국 사람들은 카르페 디엠을 행동으로 옮겼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쉬었고, 평화가 끝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면 싸웠다. 현재에 충실해 싸우고, 현재에 충실해 쉬고, 그게 로마 제국이 번영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모든 인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무수히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평일과 주말, 비수기와 성수기, 그 속에서 카르페 디엠을 찾아야 한다. 현재를 붙잡기만 하는 카르페 디엠 말고, 현재를 즐기는 카르페 디엠을 말이다. 끊임없이 달리는 말은 없고 평생 가는 건전지는 없으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므로.


이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강박 때문이다. 항상 손에 일거리를 쥐고 있어야 하는 강박, 생산성에 대한 강박,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 여기에 현대사회의 24시간 연결성까지 더해지니 생각은 과잉이고 뇌는 과부하된 상태로 살아간다.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산하고, 그렇게 카르페 디엠은 즐기기보다 붙잡는 쪽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쉴 때조차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느낀다. 막상 쉬어야 할 상황이 되어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비수기에도, 방학에도, 여름휴가에도, 쉬지 못한다. 온전히 쉬어야 하는데 온전히 쉬는 방법을 모른다.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나 역시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까지 휴식 없이 끊임없이 공부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여름휴가를 맞아 하와이로 떠나면서 나는 가방에 맥북과 일거리들을 잔뜩 넣었다. 휴가를 보내면서도 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수영을 하면서도 불안했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항상 일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도 자동으로 그렇게 됐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강둑이 터지듯 어떻게든 문제가 생긴다. 코피가 흐르거나, 만성피로와 불면증을 동시에 앓거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거나.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을 잊으려 해도 잘 잊히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운동이 될 수도, 글쓰기가 될 수도, 뜨개질이 될 수도, 요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쓰면서 쉬고 있다.


다시 카르페 디엠으로 돌아가 보자. 인생은 걷기, 달리기, 숨 고르기의 반복이다. 엊그제 걸었고 어제는 달렸다면 오늘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 한다. 현재를 붙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은 결국 현재에 충실해서 걷고 뛰고 쉬라는 말이다. 휴식이 필요하다. 다시 달리기 위해. 그리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달려온 당신을 위해. 현재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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