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원한 사랑, 결혼의 착시

사회에서 제도가 중요한 이유

by 김호빈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소멸과 증폭, 변형 등을 통해서다. 건물은 언젠가 부식되고 바위는 파도에 침식된다. 석유는 고갈되고 해수면은 상승한다. 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인류는 진화한다. 그렇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하다라는 형용사가 사랑이라는 명사를 수식하는 것부터 어색하다. 사랑은 감정인데 영원한 감정은 없기 때문이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좋았던 게 싫어지기도, 싫었던 게 좋아지기도, 그러니 일편단심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행위는 기만적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며칠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였다. 나는 빳빳한 축의금을 새하얀 봉투에 넣어 전달하고 신랑 쪽 하객석에 앉아 조용히 결혼식을 지켜봤다. 행사가 무르익어 절정에 달할 때쯤 사회자는 '신랑 신부 서약'이라는 순서를 진행했다. 사회자가 신호를 보내자 A4용지 한 장을 들고 선 신랑과 신부는 종이 위의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둘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머리를 때렸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합니다. 직관적인 반발심이 먼저 들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할까, 자신과 상대방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약속과 파기의 대가는 뭘까, 이런 물음들. 그러고 나서는 영원함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 이 세 가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객석에 앉아 손뼉 치며 한 생각 치고는 꽤 불경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영원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일 뿐이다. 기간제 사랑들을 덧대고 이어 붙여 평생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말이다. 불이 식을 때쯤 땔감을 태워 사랑하는 기간을 지속적이고 영구적으로 연장시킨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해야 온기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리스타일 바꾸기, 멋진 옷 차려입기, 근사한 식사 대접하기, 정성스러운 선물 주기, 함께 자녀 양육하기, 이런 것들을 통해서다.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니 반년에 한 번은 머리스타일을 바꿔야지, 가끔은 멋진 정장을 입고 나타나야지, 한 달에 한 번은 근사한 데이트 코스를 짜 봐야지, 애인이 좋아하는 꽃다발을 선물해야지.


그중에서도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혼이다. 결혼은 사랑의 불안정성을 통제해 영원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강제적인 제도 속에 들어가면 영원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땔감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그 절박함의 정도부터 다르다.


그래서 제도가 중요하다. 인간의 감정까지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의 본능까지. 신랑과 신부가, 확신에 찬 목소리와 서로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감히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 덕분이다.


제도는 한편으로는 족쇄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장치다. 강제성과 안정성이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사실 한쌍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한 교통법규나 검역·격리 조치, 국가의 안정을 위한 비상대권 이런 것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국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일정한 정도의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정치 이론도 있다. 제도에 속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바꿔 말하면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일부는 존재를 부정당한다.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여러 사정으로 파리 목숨을 달고 사는 불법 체류자, 결혼과 자녀 양육의 권리를 박탈당한 성소수자, 임신과 출산을 부정당한 비혼모, 극단적인 날씨에 죽는 유기견·유기묘까지. 우리 사회의 제도는 과연 모든 것을 품고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은 쉬는 법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