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열 개의 눈’ 리뷰
부산현대미술관의 '열 개의 눈' 은 단단하게 준비된 전시였다.
사전 리서치와 워크숍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 그리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이 전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감각의 고정관념을 흔드는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작품을 '본다'고 말하지만, 이 전시는 그 전제를 무너뜨린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느끼며 본다'는 것까지__열 개의 눈은 우리가 얼마나 시각에 의존해 감각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며,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협소한 관점이었는지를 일깨운다.
사람들은 흔히, 듣고, 보고, 만지는 신체 감각이 정해진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이들은 촉각으로 사물을 보고, 듣지 못하는 이들은 진동과 떨림으로 세상을 느낀다. 우리는 타인을 만나면서도 자신의 감각은 고정된 것으로 여긴다.
'열 개의 눈' 은 그 감각의 고정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중에서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세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단지 잘 만들어진 예술품이 아니다. 우리의 감각적 인식을 흔들어준 시선들이었다.
엄정순 작가는 오래도록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예술가다. 시각장애인과의 협업을 통해 시각 중심의 인식 체계를 비틀어온 그의 작품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총 8점의 평면 회화로 구성된 '당신의 눈동자를 위하여' 는 초상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보인다’는 개념을 절제하고 추상화한 시각적 실험이다. 흐릿한 윤곽과 겹쳐진 면들 속에서 우리는 인물의 표정을 추측하지만, 끝내 분명히 볼 수는 없다.
이 초상화는 마치 처음으로 시력을 되찾은 이가 감각과 기억, 상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장면 같기도 하다.
‘본다’는 행위의 본질은 시각이 아니라, 인식이며 해석이다.
정연두 작가의 '와일드 구스 체이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의 한 시각장애인에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그가 촬영한 초점 없는 사진들을 빠르게 전환시켜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경에 흐르는 재즈 음악의 코드에 따라 이미지가 빠르게 전환되며 밝은 플래시 효과가 겹쳐진다. 흔히라면 ‘실패한 이미지’로 분류될 수 있는 흐릿한 사진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시각적 피로와 감각적 혼란을 선사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찍은 사진은, 보는 이의 감각을 교란시킨다.
시각이란 도구가 얼마나 많은 정보와 편견을 덧씌우고 있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시각장애인 작가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안내견 런던이와의 관계를 조각과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런던이의 몸에, 런던이의 얼굴을 자신의 몸에 이식한 조형물을 만들어냈다. 그 조형물은 사랑과 의존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동물이라는 개념의 경계를 지우는 제스처였다. 그것은 감각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감각기관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되는 이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진짜로 보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또 하나,
"감각은 과연 고정된 것인가?"
감각은 고정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당연히 여겨온 인식이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을 이 전시는 증명해냈다.
무엇보다도, 이런 전시가 한국에서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다. 장기적인 리서치와 협업, 그리고 사회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흔치 않다. 단발성 전시와 예산 중심의 제도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이런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은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열 개의 눈' 은 예술가, 학예사, 기관, 그리고 시민들이 긴 시간 함께(사전준비 기간2년) 감각을 실험하고 연구한 결과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적 움직임의 미래라고 믿는다.
이 프로젝트는 결코 작은 움직임이 아니다.
문화 선진국은 갑자기 도착하지 않는다.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이 전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