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들어 늘 궁금했다. 세상은 정말 이토록 정교한가? 아니, 어쩌면 너무 정교해서 마치 가짜 같다.
최근 과학과 철학, 기술을 통해 제기되는 수많은 가설 중, 나는 닉 보스트롬의 '시뮬레이션 가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고도로 발달한 존재가 만든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 말하자면, 이 현실은 하나의 정교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관찰이 있어야 존재하는 세계
이런 주장을 단순히 철학적 상상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양자역학, 그 중에서도 빛의 이중성 실험은 관찰의 유무에 따라 입자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누군가가 보고 있을 때만 입자는 '존재'의 형태를 띠고, 그렇지 않으면 파동으로 흩어져 있다.
마치 우리가 하는 게임처럼, 캐릭터가 바라보는 시야만 렌더링되고, 그 바깥은 단지 시스템 언어일 뿐인 구조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풍경, 만지고 있는 세계도, 관찰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AI가 만든 존재는 진짜일까?
요즘 영상 플렛폼에서 보이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가상의 인물들’은 인간의 언어, 감정, 역사, 문화, 표정, 움직임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존재들을 콘텐츠로 소비하며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이 남는다.
“그들은 실재하는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 가상의 존재는 데이터로 구성된 ‘사념의 형상’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오며 경험하고 쌓은 것들을 기억하고 학습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그 가상의 인물들 속에서 진짜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예술가의 감정은 가짜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로 생각이 이어진다. 우리가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감정은 진짜일까?
혹은 그것도 시뮬레이션된 현실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일까?
예술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제된 사념이자, 가장 고유한 진실이다. 누가 그것이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하든, 우리가 느끼는 사랑, 외로움, 슬픔, 환희 같은 감정들은 바로 그 순간, 진짜가 된다.
빛이 관찰될 때 입자로 존재하듯, 감정도 누군가가 느끼고 기억하는 순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극단적 허무주의나 회의주의로 이어지진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시뮬레이션 안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예술적 사유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면, 예술은 그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코드다. 우리는 현실인지 가상인지 모를 세상 속에서도, 진짜처럼 사랑하고 기억하며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