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옷깃이 스치듯

전시리뷰 :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by kim hojin
2012년 대구강정현대미술제 설치 당시 이강소 작가의 작품 풍경 셋, 2012

2012년 나는 제1회 대구 강정 현대미술제의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이강소 작가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의 안성 작업실을 찾았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1970년대 대구 강정의 낙동강 변에서 진행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아카이빙하기 위해 모은 기록들과, 선생님께서 건넨 많은 이야기들이 내게는 귀중한 예술의 전승처럼 느껴졌다. 흥미롭게도 나의 본적은 선생님 댁 옆집이었다. 당신의 조부님이 한의사셨다며 기억해주신 순간은 놀라웠다.


안성시 남풍리 이강소 작가의 작업실 풍경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강소라는 예술가를 단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보지 않았다.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각, 회화, 비디오 작업까지 시도했던 그의 실험정신은 한결같았고, 무엇보다 젊은 작가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세계를 유연하게 열어두는 태도는 지금도 배움의 대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풍래수면시는, 그러한 이강소의 철학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전시명을 이루는 글자—바람이 물 위를 스칠 때—는 단지 시적인 감상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이강소 픙래수면시 전시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으로 남는다. 수면 위에 미세하게 번지는 곡선들, 잔물결, 반짝이는 비침을 통해 우리는 바람이 존재함을 감지하게 된다. 이강소의 작품은 바로 그 감각, 그 흔적의 층위에 있다.

우리는 흔히 대상과 실재를 구분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물결이 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이를 들여다본다. ‘풍래수면시’는 바람이 실제로 불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수면에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 인식의 작동을 묻는다.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의 배열이나 구성보다, 이강소 작가가 평생에 걸쳐 형성해온 예술관 전체를 하나의 세계처럼 조망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전시장은 마치 작가의 사유 안으로 진입하는 입구처럼 느껴졌고, 관람자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내재된 철학과 감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이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를 따로 감상하기보다, 작가가 오랜 시간 쌓아온 예술적 사유의 흐름 전체를 하나의 세계처럼 느끼게 한다. 관객은 그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 안을 걸으며 체험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때로 하나의 가상현실처럼 펼쳐진다. 우리는 그 안에서 머물고, 감지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비추게 된다. 그것이 이강소라는 예술가가 만든 질서다. 그는 질서를 설계하지 않고, 대신 감지하도록 유도한다. 감각을 통해 도달하는 질서 그 보이지 않는 흐름 안에서 우리는 예술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존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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