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망친 사람들 3

요셉 보이스— 우리 모두가 예술가 이다.

by kim hojin

요셉 보이스는 예술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사회를 향한 선언이고, 교육이며, 정치적 실천이었다. 물감을 칠하고 조형물을 세우는 대신, 그는 가르쳤고, 행동했고, 말로 작품을 만들었다.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라는 그의 선언은 이제 전설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이 말은 과연 예술의 문턱을 낮춘 것일까?, 아니면 그 문턱 자체를 없애버린 것일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매혹적이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면 그 반대로 아무도 예술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물음도 뒤따른다. 그의 대표적 퍼포먼스 중 하나인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그리고 미국은 나를 사랑한다(1974)”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차에 실려 갤러리에 도착한 그는 펠트와 지팡이만 든 채 코요테 한 마리와 함께 3일을 보냈다. 그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공간은 완전히 격리되었고 그 안은 신화화된 상징들로 가득했다. 보이스는 미국과의 치유를 말했지만, 관객은 그저 바깥에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참여를 강조했지만 그 참여는 제한되었고 상징은 모호했으며 해석은 열려 있었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었다. 그의 예술은 개념을 확장시켰고,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지평을 넓혔지만 동시에 창작 행위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의 영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오늘날의 참여형 예술, 사회적 예술, 공동체 예술은 그의 계보 안에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참여를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참여의 민주성보다 의도의 명확함과 감각의 진정성 위에 설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보이스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했다. 그의 이상주의는 존경받을 만하지만 동시에 신화적 자아를 구축하고 권위적 개념을 구축하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탈권위의 예술을 말하면서 권위를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예술은 세상을 흔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진동은 감정에서 온다. 보이스는 그 감정을 사회로 확장하고 싶어 했지만 그 메시지는 점점 모호해졌고 예술의 자리는 선언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그의 예술은 질문을 던졌다.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예술가는 누구인가?"

"창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의 방식이 만든 틈은 이후의 예술을 지나치게 개념화했고 예술가가 아닌 ‘예술적 선언자’들로 장을 채우는 현상도 낳았다. 예술의 역할과 힘을 묻는 그의 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예술의 확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셉 보이스는 예술의 경계를 밀어냈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이 경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그가 만든 흐림과 탈형식은 때로 예술의 해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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