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거부할 권리

나는 행복을 원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에 후회는 없었다.

by kim hojin

1. 우리는 왜 행복을 강요받는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행복을 삶의 기본값 처럼 설정하고 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 자아를 실현하는 일, 감정을 관리하는 일 모두가 행복이라는 말 아래 종속되어 있다. 우리는 행복을 말할 때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말은 어떤 기준을 전제로 작동한다. 감정을 드러낼 때조차 행복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슬픔은 종종 설명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행복은 증명을 요구한다. "진짜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질문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라기보다, 행복하다는 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다양하고 사람은 복잡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조율한다. 그 조율의 끝에서 남는 건 오히려 공허함이었다.


2. 죽음은 행복을 묻지 않는다.
필자는 위의 내용을 정확이 인지 하기까지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그이유는 딱 한 번, 정말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희귀암 진단을 받고 5일 안에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서명한 동의서에는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장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공포나 후회보다 차분함에 가까웠다. 머릿속을 떠오른 질문은 나는 나의 삶을 살아왔는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선택이었는가? 정도였다. 이루지 못한 목표도 있었고, 미완의 프로젝트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미련으로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내 삶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 위안도 되었지만 여러가지 후회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그보다 앞선 질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앞서기 보다는 질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3. 평온은 결과가 아닌 상태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상태에 가깝다. 평온하고 걱정이 없는 시간정도? 나는 그 상태에 닿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작업을 해내고, 누군가와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달려가는 동안 나는 언젠가 평온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애쓰는 이유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평온은 결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 숨어 있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표현할 수 없어 괴로워하던 시간,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단단해지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단단함이야말로 나에게 의미 있는 감정이었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고, 가끔은 불행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4. 당연히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행복이 아니다.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말은 어쩌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겠지만, 나에게는 늘 물음표였다. 고통을 통과한 후에야 행복이 찾아온다는 서사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내가 견뎌온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나는 불행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만든 것은 그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의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감정의 결과보다 감정이 지나가는 방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그 흐름을 고정시키려 했다. 찰나의 빛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을 붙잡으려는 시도가 때로는 더 큰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 불안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을 원했다.


5. 행복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죽음을 앞두고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 모든 시간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살았고, 그것이 유일하게 중요했다. 감정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에 그 시간은 더 온전했다. 당연히 모든이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감정에 붙는 언어는 사회가 만든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하면 그 언어를 벗어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평온을 원하고, 내가 만든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부하고 싶다. 나는 내 감정을 믿고, 내가 만든 시간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행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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