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브랜드의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최근 몇 년, 정부와 각종 기관이 발표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K-’라는 접두어가 붙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워졌다. 문화, 기술, 교육, 복지, 관광에 이르기까지 공공정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 알파벳 'K' 글자는 일종의 보증처럼 기능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서비스명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정부의 전략과 시장이 기호 하나에 맞춰지고 있다. ‘K-’는 이제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프레임이 되었고 한국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코드로 사용되고 있다.
이 흐름은 국가가 주도하는 브랜드화 전략의 일환이며 문화산업정책의 구조적 방향성을 반영한다. 정부는 한류를 전략자산으로 정의하고, 콘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문화 수출을 본격화해왔다.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K-콘텐츠 펀드’, 그리고 각종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은 모두 K-브랜딩이라는 우산 아래 편성되었다. 그 결과 콘텐츠 수출액은 매년 최고치를 갱신 중이다. 한국 문화는 세계 시장에서 흥행력을 가진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 모든 과정은 분명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브랜딩 전략이 문화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침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K-’는 모든 것을 즉각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압축한다. 글로벌 친화성과 상품성을 기준으로 정체성이 재구성되고 감정의 층위와 맥락의 농도는 희석된다.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마치 단일한 얼굴을 복제하고 있는것 같다. ‘K’라는 이름 아래 모든 콘텐츠는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고 낯선 것과 충돌하는 경험은 사라져갔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술마저도 이 브랜드 전략에 편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험적 현대미술이나 전통공예, 미디어아트까지도 ‘K-아트’라는 이름으로 묶이며 동일한 소비 논리에 휘말린다. 공공기관의 공모전, 국제 문화교류, 지역 축제와 전시기획이 모두 “K-문화”라는 이름으로 분류될 때 예술은 감각과 질문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이미지로서만 작동하게 된다. 그것은 상품이고 콘텐츠이며 브랜드다. 예술이 본래 품어야 하는 질문은 그 안에서 삭제된다.
예술은 국가의 얼굴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술은 브랜드가 아니라 개인의 고통, 시대의 감정, 그리고 말해지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질적이고 복잡하며 때로는 불편한 감정과 기억들, 이를테면 ‘한’과 상실의 정서는 지금의 K-브랜딩 프레임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잃고 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반짝이고 간편한 흥의 이미지뿐이다. 그 이미지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우리를 대표할 수는 없다.
문화는 산업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산업이 아니다. 예술은 반드시 경제적 논리나 수출 전략에 종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술은 타이밍에 민감한 시장의 흐름보다는 조금 늦고 복잡하며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는 감정의 진폭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예술이 ‘K’라는 단어로 묶여 하나의 표준 아래 소비되는 순간 우리는 창작하는 의미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