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작업노트
기억의 단서; 전파_H아트프로젝트
Memory Clues; Transmission
이 작업은 팀원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생전 라디오와 오디오 장비를 수집하고 직접 수리했던 전기 기술자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라디오 장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시간 속에 정지된 기억의 파편이자, 여전히 미약하게나마 울리는 ‘소리의 흔적’이었다. 우리는 그 흔적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개인적인 회상을 넘어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보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억은 어떻게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다시 수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기억의 단서; 전파’는 떠난 이들이 남긴 단서와, 남겨진 자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는 사운드 기반 인터랙티브 설치 작업이다. 이 작업은 라디오라는 장치의 원리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 라디오는 의미 없는 잡음만을 낼 뿐이다. 그러나 신호를 정밀하게 조정하면,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다. 이 원리를 감정의 구조에 빗대어, 관객이 감정 다이얼을 직접 조절하며 기억과 감정을 탐색하는 구조로 발전시켰다.
작품의 중심에는 ‘메인 제어 라디오’가 있다. 관객은 이 라디오의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 감정을 조정할 수 있다. 왼쪽으로 돌릴수록 부정적인 감정—외로움, 두려움—이 강조되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희생과 그리움 같은 긍정적 감정이 떠오른다. 이 다이얼 조작은 곧 ‘기억을 되짚는 물리적 제스처’이며, ‘감정을 조율하는 신체적 은유’로 기능한다. 관객은 단순한 체험자가 아닌, 스스로의 기억을 조정하고 송신하는 ‘청취자이자 송신자’가 되는 것이다.
공간 내부에는 팀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양한 사운드 인터랙션이 설치되어 있다. 각 라디오는 팀원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기반으로 사운드를 송출하며, 그 감정적 결은 각기 다르다. 어떤 기억은 ‘침묵의 공명’처럼 낮고 무거운 잔향을 남기고, 어떤 기억은 ‘깜빡이는 신호’처럼 불안정하고 끊어질 듯한 파형으로 나타난다. 이 사운드들은 관객의 다이얼 조작에 따라 반응하며, 실시간으로 음향 구조를 재조합한다. 감정의 비율이 변할수록 사운드는 부드럽거나 거칠어지고, 따뜻하거나 날카로워진다.
시각적 장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간의 바닥에는 관객이 조작한 다이얼 값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프로젝션이 설치되어 있다. 감정이 부정에 가까울수록 바닥에는 푸른 정맥의 패턴이 나타나고, 긍정에 가까울수록 붉은 동맥의 흐름이 퍼져나간다. 또한 라디오와 스피커를 연결한 전선들은 단순한 기능적 구조가 아니라, 붉은색과 파란색의 배선으로 구성된 ‘감정의 혈관’이다. 이 배선은 기억의 흐름이자 감정의 루트로서, 작품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관객은 이 시청각적 구조물 속을 직접 걷고, 감정을 따라 이동하는 내적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감정과 기억이 단순히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작용을 통해 ‘다시 수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다. 관객의 해석과 선택, 감정의 조정에 따라 기억은 새로운 파형을 형성하며, 다시 살아난다.
‘기억의 단서; 전파’는 궁극적으로 잊힌 목소리를 되찾는 사운드적 의식이며,
각자가 잃어버린 대상을 감정적으로 조율하고,
다시 ‘맞춰 듣는’ 경험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