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야기
딸기의 계절이 왔다.
우리 사랑스러운 두 따님들, 딸기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문제는 딸기 가격이다.
이맘때쯤 딸기는 참 비싸다.
엊그제는 딸기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한 팩 500그램 짜리가 9900원이라는 말에,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직장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딸기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 좀 알아?"
"애들이 딸기를 좋아하는데 비싸서 감당이 안 돼"
"농수산물 시장에 가보세요"
"운 좋으면 한 팩에 5000원에 살수 있어요"
쉬는 날, 아이들을 먹일 딸기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칼바람을 맞으며 동네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무지 쌀거라고 기대하고 왔었는데, 실망스럽게도
딸기 한 팩이 8000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두 팩에는 15000원이라는 것.
결국 한 팩당 7500원에 총 4팩을 사 왔다. (현금가)
아이가 한 명이었을 때는 식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입이 짧은 큰 아이가, 먹어도 새 모이만큼 먹었고,
먹는 것에도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한 명 더 낳고 상황이 달라졌다.
마치 둘이 경쟁하듯이, 하나라도 더 많이 먹으려고 먹는 속도마저 빨라졌다.
특히 딸기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새콤달콤 색상마저 영롱한 이쁜 딸기들.
베이킹파우더를 뿌려서 깨끗이 씻은 후 마지막에 식초 한 방울을 넣고, 헹구었다.
딸기를 씻다가, 물러 빠진 모양이 안 이쁜 딸기를 딱 하나 먹어 보았다. '이쁜 딸기는 우리 딸들 줘야 하니까..'
참 달고 맛있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접시에 나누지 않고 딸기를 한 번에 큰 접시에 담아 주었었는데, 서로 먹겠다고 싸워서
그다음 터는 각자의 접시에 똑같은 개수로 나누어 주었다. 500그램 한 팩에 총 24개의 딸기가 들어 있었다.
작은 아이 10개, 큰아이 10개
내가 한 알 먹고,
안쓰러운 신랑에게도 조금 나누어 주었다.
(노란 작은 접시가 신랑꺼)
아이들은 딸기를 보자마자 야무지게도 포크로 찍어 먹었다.
"엄마 딸기 하나 먹어봐"
권하지도 않았다. 살짝 서운함이 들었다.
괜찮다! 내 딸들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나는 기분이 좋으니까.
신랑에게는 딸기 세알을 주었는데,
게 눈 감추듯이 먹더니, 나에게 말한다.
"여보, 나도 딸기 한 알만 더 주면 안 될까?"
"미안. 이게 다야. 집에 딱 한 팩 밖에 안 남았었거든"
딸기가 없다고 대답했더니
신랑은 딸들 접시에 담겨 있는 딸기를 하나씩 포크로 집어먹었다.
그 순간 다섯 살 된 둘째 딸이 난리가 났다
" 내 딸기 왜 먹어. 왜 먹냐고!!"
으어엉~ 울기 시작한다. 급기야 소리까지 지른다.
이런 민망한 상황이. ...고작 딸기 반쪽 먹었을 뿐인데,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우리 신랑 많이 속상했나 보다.
"내가 삼 교대해서 힘들게 돈 벌어다 주는데, 그깟 딸기 하나 먹었다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그러네"
"정말 서운하다"
정말 그때만큼 신랑이 불쌍해 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삼교대 근무하는 나만큼 우리 신랑도 힘들게 일한다.가끔은 대근을 하느라,
집에 못 들어온 적도 있고, 항상 일하느라 피곤에 찌들어 있는 우리 신랑...
딸기 한 알로 빈정이 상해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결혼 3개월 만에 우리 딸을 임신했고,
그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우리 신랑은 항상 뒷전이었다. 말그대로 " 쩌리 " 였다.
"당신한테 나는 뭐야?"
"나도 애들 챙기는 만큼 좀 챙겨주면 안 돼"
"나도 좀 사랑해 줘 여보"
이런 얘기를 가끔 하곤 한다.
"당신은 어른이고, 우리 딸들은 어리잖아"
"제발 투정 부리지 마. 나는 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너무 힘들다고!!"
나는 항상 그렇게 차갑게 대답했던 것 같다.
우리 신랑은 소개팅 때 만났는데, 사실 내가 한눈에 보고 반했다.
키는 작았지만, 외모도 반반하고 멀끔한 옷차림에 옷맵시까지 좋았다.
그리고 매너도 좋았고, 착했다. 게다가 직업도 좋았다.
나는 물론 튕기는 척했지만, 우리는 금방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설레는 2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혼 시절,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신랑을 보고 설레는 시절이 있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었다.
두 딸아이가 세상의 전부이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딸기를 더 싸게 사기 위해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재래시장에 바퀴 달린 시장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는 아줌마.
그러면서, 신랑의 존재를 간과했던 것 같다.
신랑이 없었다면, 우리 아이들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화목한 가정도 없었을 것인데.....
"왜 접시를 세 개로 나누어 똑같이 주지 않았을까"
"왜 아이들만 딸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날 밤 마음이 살짝 아팠다.
힘든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여보 수고했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걸.
문소리가 나면 오는 둥 마는 둥.
육아에 지쳐 인상만 쓰고 있었던 나...
얼마나 외로웠을까?
"여보 음쓰 버리고 와"
"여보 청소기 좀 돌려줘"
"여보 월급 나왔으면 이체해줘"
이런 말로만 대화를 이어갔던 나에게 부끄러워졌다.
우리 집안의 대들보, 멋진 가장, 자상한 아빠.
이쁜 두 공주들의 듬직한 아빠. 그리고 착한 남편.
"여보 앞으로 딸기 많이 줄게"
"많이 신경 써 줄게. 미안해"
처음으로, 아이들이 아닌, 우리 남편에 대해 글을 써 본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까?
어릴때,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생선살만 발라주시고, 본인은 생선 머리만드셨었고,
치킨을 시키면 한조각 드시고 배부르다고 너희 많이 먹어라 하셨었다.
그때는 배가 부르신가보다 생각했는데.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이제 그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