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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Jan 05. 2021

돈이 없어서, 병원비 좀 깎아 주세요! 안타까울때..

간호사 이야기


© anncapictures, 출처 Pixabay


간호사 13년 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었다.

23살 철없을 때,

간호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이 되어서, 지금까지 쉼 없이 열심히 일했다.

결혼하기 전, 아가씨 시절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아이 둘의 엄마가 되고 나서 보이기 시작했다.


신규 간호사 시절, NICU(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는 작고 작은 아기 천사들의 이쁨을 몰랐었다.

단순히 내 일터로 생각했었고, 그때는 윗년차 선생님들에게 혼나느냐고 정신이 없었다.

아마, 이쁜 딸이 둘이나 있는 지금, 신생아실에서 일했다면, 더 열정적으로 아기 천사들을 간호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그때는 이성이 앞섰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항상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사람이었다.


전철에서 돈을 구걸하시는 분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지하상가 계단 한편에서, 엎드려 손을 벌려 구걸하시는 분들을 보고도 항상 돈천원이라도 쥐어 드렸다.


" 저런 사람들 돈 주지 마! 우리보다 부자래"

" 저런 사람들 전철에서 쩔뚝거리고 아픈척해도, 밖에 나가면 엄청 잘 걸어 다닌다던데?"


사실 전철에서 돈을 구걸하던 분이,

진짜 다리가 불편하신 건지, 실제로 돈이 많은지, 아닌지는 나와 상관이 없었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그러겠어"

"오죽했으면 아픈 척을 하고 구걸을 다니겠어"


정말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간호사로 일을 할 때도 그랬다는 거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27살 재활병원에서 일했을 때 일이다.


내가 일했던 재활병원 환자들은 주로 뇌 병변으로 사지가 마비되거나, 큰 사고를 당해서 일상생활이 불가하신 분들. 말을 할 수 없고(의사소통 불가)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어서 L-TUBE (콧줄)을 끼고 계시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이런 분들은 일상생활이 불가하기 때문에, 간병인 또는 보호자가 24시간 상주해야 했다.

환자를 24시간 돌보아야 해서, 일을 할 수 없었던 보호자분이 생활고에 시달리셨다. 항상 병원비 걱정을 하셨고, 급기야 환자의 기저귀 살 돈도 없는 눈치였다.


보호자분은 참 좋으신 분이셨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 주셨고, 작은 간식 하나라도 나누어 주시는 인정 많은 분이었다.


"선생님 안 되겠어요. 제가 제 돈으로 기저귀 사드리면 안 될까요? "


간호사 5년 차 때 일이다. 나는 그냥 너무 안타까워서, 내 돈으로 기저귀를 사드린다고 했다가 나는 그날 윗년차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


"OO야, 환자가 아무리 딱하고 가여워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맞다. 나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다. 그런데 측은하고 딱한 걸 어쩌냐고...

재활병원에서 3년을 일하면서,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이는 20대. 나보다 어린데, 전기 감전을 당해서, 사지 마비가 된 환자분, 교통사고를 당해서 coma(혼수) 상태에 빠진 내 또래 여성분, 볼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물론 간호사 생활이 계속되면서 점점 그 감정은 무뎌졌지만 말이다.



© Victoria_Borodinova, 출처 Pixabay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70세가 훌쩍 넘으신 어르신이 골절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으나,

병원비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 이거, 얼마예요?"

" 이거 비싼 거예요? 돈 들어요?"

" 돈 드는 거면 나 안 할래"


사사건건, 하는 치료마다, 돈이 드냐고 물어보시며, 비싼 거면 안 한다고 거절을 하셨다.


"내가 사실 돈이 없어요. 자식이 둘 있는데 하나는 연락이 안 되고, 하나는 형편이 어려워서.."

" 병원비 좀 깎아 주세요"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내가 병원비를 깎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각자 집안에 사정이 있겠지만,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몇백만 원 하는 병원비를 내기 어렵다고 하시니.. 어르신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 하나는 서울대 박사고, 딸은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어요."


이렇게 자식 자랑하시는 분들, 막상 병원에 아무도 안 찾아온다. 자식이 아무리 잘나면 뭘 하나. 부모님이 수술을 했는데, 병문안 한번 안 오는걸...


" 나 너무 배고파요"

" 먹을 것 좀 없을까요? "


가끔 수술 환자분이 NPO(금식) 시간이 풀리면, 먹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상 간호사가 환자에게 개인적으로 먹을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음식이 탈이 날 수도 있고, 또 다른 환자분들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얼마 전에 보호자분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먹는 간식을 몰래 드렸다. 안 되는 걸 알지만, 안타까워서 어쩔 수 없었다.


"에라이, 그깟 원칙이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 환자분께서는 평생 이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 먹어 본다며, 내일도 또 달라고 하셨어 조금은 난감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병원비를 깎아 달라고, 내가 지금 형편이 안된다고, 자식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나도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얘기를 들어 드리고, 공감해 주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쿨하게 " 네 제가 잘 말해서 DC 해드릴게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 kristensturdivant, 출처 Unsplash


"나는 노후 준비를 잘해 놔야겠다"

"너무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아야지"

"보험을 잘 들어놔야겠구나"


가끔은 이런 현실적인 생각도 해본다.

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 착한 척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인 걸 어째...


택배가 하루에도 몇 개씩 오는 우리 집, 매주 금요일 재활용 버리는 날 택배 박스가 수십 개나 나온다.

어느 날 그걸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차 트렁크에 박스를 전부 실었다.

그리고 출근하는 길, 동네 폐지 줍는 어르신께 차 트렁크를 열어 박스를 드린 적이 있다.


"고마워요. 아가씨,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이 다 있어"


나 아가씨 아닌데, 기분이 내심 좋았다.

아무튼, 이왕 버리는 거,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되면 좋은 거니까.

물론 우리 신랑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요즘 사람들 무서우니 애써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 둘을 낳고, 나는 좀 더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이 둘의 엄마가 강인하고, 단단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꼭 "감성"적인 게 안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 감성에만 치우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답답하기도 하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따르는 데로 하련다.

이런 내가 먼 훗날 한 30년 후??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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