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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Jan 07. 2021

아기천사 하늘에 별이 되었던 날. 해마다 이맘때쯤.

신규 간호사 이야기


딸 둘을 낳고

내가 이렇게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나는 아가씨 시절에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 둘의 엄마가 되고 보니 남의 아이들조차 다 이뻐 보였다.

물론 힘들 때도 많다. 특히 아이 둘이 싸울 때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다 가도, 둘이 언니 동생~하면서 잘 놀 때는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 자식을 위해서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아가씨 시절, 일찍 결혼한 친구가 했던 말.

사실 그때는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자식도 중요한데, 자기의 삶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항상 이맘때쯤 새해가 되면 생각나는 아기 천사가 한 명 있다.  왜 자꾸, 13년 전 신규 시절 신생아실에 있었던 이야기만 하는 거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첫 대학병원에서의 3년간 직장 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에

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13년 전 아니다. 내가 간호사 2년 차였으니

12년 전이 맞겠네.

그날 나는 무척이나 작은 아기 천사를 보았다.

엄마 뱃속에서 25주를 살다가

500그램의 몸무게로 세상에 태어난 아기.

(몸무게가 아주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나는 살면서 그렇게 작은 아기는 처음 보았다.

보통 정상 신생아들은 38~40주를 엄마 뱃속에서

채우고, 몸무게는 평균 3킬로 정도 되는데..

500g 아기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때 말 그대로 "쌩신규"였다. 아기가 나오기 전 급하게 워머를 세팅해야 했고

가장 두려웠던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를  조립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정말 작은 아기가 나왔구나.


"선배한테 안 혼나도록, I/O 체크도 잘하고

벤틸레이터 세팅도 잘 확인해야 되겠다"


사실 이런 생각뿐이 없었다. 그리고, 몇 달간 그 아기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내 할 일이 바빠서

아기에게 힘내라고 말 한마디 못 해줬던 것 같다.


오래되어서, 아기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작디작았던 모습과, 인상 좋고, 한결같았던

그 아기의 부모님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하루 두 번 면회가 가능했다.

오전 시간 한번, 오후 시간 한번, 이렇게 두 번. 언제나 한결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아기 천사의 부모님은 매일 면회를 오셨다.


" 아가야 엄마 왔어 잘 잤어?"

" 아가야 엄마가.. 목소리 매일 들으라고, 라디오에 녹음해 왔어, "


아기의 엄마가, 작은 카세트에 목소리를 녹음해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수줍게 부탁하셨다


"선생님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우리 아가, 매일 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라도 들여주면 힘내지 않을까 해서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틀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해서, 하루 한 번씩

작디작은 아기 천사는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쌩신규

였고, 크나큰 감정 없이, 시간이 되면 미니 카세트 버튼을 누르고 아이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아기의 부모님은 지극정성이었다. 직접 만든 손수건에,

"우리 아기 사랑해. 힘내."

자수를 넣어 가져다주셨고, 침대 맡에 놔줄 수 있냐고

부탁도 하셔서 그렇게 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 권한은 아니고, 수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500그램의 작은 아기천사는

생후 100일까지 잘 버텨 주었고,

백일 파티도 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생아 중환자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백일 축하를 위해,

케이크를 사 오셨었고 아기의 부모님들도 중환자실에 들어와  사진 찍고 노래를 불렀었다.


한 번은, 어린이날이었던가.. 스승의 날이었던가..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기의 엄마가 직접 만들어오신 집 김밥. 이 정말 맛있었다.

아직도 그 맛이 생각날 정도로 말이다!


우리 신생아 중환자실 선생님들은.

그때는 참 무서웠던 선배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하셨던 분들이었다.


아기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주치의 선생님은 해외에서 미숙아용 엄청 작은 옷을 사 오셔서

중환자실의 아기들이 생후 100일이 되거나 기념일이 되면, 꼭 파티를 해주셨었다.


물론 나는 그때 아가씨였고 정신없는 신규라서,

100일이 왜 중요한 건지

그런 건 왜 해야 되는 건지?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하루하루가 기념일이며,

50일 100일 돌 그리고 두 돌 생일 그렇게 소중할 수 없더라.....


" 죄송하지만, 인큐베이터에 있는 우리 아가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나요?"

" 우리 아기 오늘은 모유 좀 먹었어요?"

" 응가는 잘 싸나요?"


보호자분들이  우리 아이가 모유를 얼마나 먹었고, 이쁜

응가를 쌌는지... 왜 궁금할까???

이런 질문이나 부탁을 하실 때

나는 진정성 없이 대답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작은 아기천사가 상태가 좋지 않기 시작했다.

SP02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않아서 ventilator 모드 세팅을 계속 바꿔 나갔지만

호전이 없었다.


혈압도 점점 떨어지고,

 그 작은 몸에 온갖 주사약을 주렁주렁 달아 놓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100일이나 잘 버텨 주었는데.......

눈이 많이도 왔던 어느 날, 나는 미드데이로 출근을 했는데 신생아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모니터는 울려대고, 주치의 선생님은 아이 앞에서 킵에 계셨고,

문밖에서는 보호자분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울면서 말이다.


" 아.. 때가 왔구나.."

" 보내줘야 할 때가 왔구나..."


신규였던 나는, 눈치만 보면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작고 작던  아기 천사가 세상을 떠났다..

주치의 선생님이 사망선고를 내리셨다.(나는 그날 생명이 떠나는걸, 처음 보았다)

무서웠고,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기의 부모님이 흐느껴 우셨다


" 선생님들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어요"

" 너무 수고하셨어요"

" 고맙습니다"


본인도 너무 슬프도 힘들 텐데,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해주시다니....

신생아실 식구들을 보며, 이렇게 인사를  하시는데, 주치의 선생님부터, 우리 모두 울면서  눈물 닦기에 바빴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에 일이지만, 12년 전 그 일이 너무 생생하다. 그분들의 목소리, 우리에게 주셨던 정성 가득 담긴 선물들.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맘때쯤 가끔 생각이 난다.

그때는 몰랐다.

자식을 잃는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작은 아기 천사.

내가 그때는 따뜻한 말.. 많이 못 해주고 마음을 다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좋은 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겠지?


천사처럼 자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니 이제야 알겠다.

수족구만 걸려도, 장염만 걸렸어도 노심초사 걱정이 돼 죽겠는데...


" 딸들~ 미안해, 엄마가 내일은 야간 근무라서

할머니 집에서 자야 되겠는데 괜찮지?"


"응 괜찮지"

"엄마 그런데 밤에 일하면 엄마는 1시간도 못 자는 거야?"


큰딸이 이렇게 기특한 질문도 해준다. 7세의 위엄이랄까.


아이는 행복이며, 내 삶의 크나큰 부분이다.

오늘도  내가 지켜야 할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힘을 내어 본다.


최근에, 아동학대 사건을 보니..

너무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와서 기사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아기들은 모두 천사랍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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