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슈맘 Mar 10. 2021

나이트 근무 첫날,아이들 등원 후 꿀 같은 6시간

워킹맘 이야기


오늘도 유치원 등원 차를 놓쳤다.


어젯밤, 퇴근 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육퇴를 하고 나니 밤 11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던 게 화근이었다. 잠이 안 와 새벽 두 시에 잠이 들었고, 결국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알람은 분명 아침 8시에 맞춰놨는데, 눈뜨니 8시 50분.

등원차량이 오는 시간은 8시 47분이다.




© all_who_wander, 출처 Unsplash



사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하루에 8시간.. 아니 9시간은 푹 자야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한 가지 핑계를 대자면, 나는 삼 교대... 그놈의 삼 교대... 하는 직장 맘이니까, 남들처럼 미라클 모닝... 따위는 못한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래. 나는 삼 교대하니까, 잠을 많이 자야 해. 절대 게으른 게 아니야" 14년째 합리화 중...


잠에서 덜 깬 아이들에게, 후다닥 옷을 입히고, 아이 두 명의 식판과, 수저 그리고 물통을 유치원 가방에 초스피드로 넣었다.


"어머니~ 등원 차량 먼저 출발합니다!"

등원 차량 선생님께 이제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는다. 매일 지각하는 걸 아시니까.... (창피하다)


"엄마, 나 오늘도 지각이야?"

음.. 아니야. 아직 안온 친구들도 있을 거야...


아침밥도 못 먹어서 보내는 게을러빠진 어미를 용서해 다오. 유치원에서 오전 간식 먹으니까 괜찮겠지??




맨얼굴에, 실내복 차림으로 아주 형편없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집에 오니 오전 10시였다.


"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그냥 잠이나 더 잘까?"

쉬는 날이니, 잠이나 더 잘까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쉬는 날이 아니다... 나이트 근무 첫날이었다. (야간근무 8시 출근 아침 7시 퇴근)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드라마나 보면서 쉴까 하다가, 집 꼬락서니를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또 삼 교대하느라, 집안일을 못 했다고 그래서 더럽다고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먼지 가득한, 놀이 매트를 걷어 내고 청소기도 돌리고, 바닥에 덕지덕지 묻은 클레이 가루도 떨어냈다. 날씨가 좋아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청소를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분명히 미니멀 라이프 따라 한다고 두어 달 전에 장난 감방에 장난감들을 죄다 처분했는데, 아직도 산더미인 게 참 의문이다.

피겨, 병원놀이, 블록, 레고 등등 분류를 해서 이쁘게 정리를 해놓아도 신기하게 일주일을 못 간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겠지?

너무 아기 장난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아이들이 보기 전에 몰래 버려야지....

직장맘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사줬던 장난감들.

이렇게 하나둘씩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구나... 이 돈으로 팡 플러스 ETF 나 사서 모을걸...





세상에 얼마나 빨래가 밀렸는지, 속옷이랑 당장 신을 양말이 없다. 세탁기를 세 번이나 돌렸다.

작아진 아이들도 정리해서 모아놓고, 세일해서 1+1 29900원에 산 티셔츠도 이쁘게 빨아서 널어놓았다. 세상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일들을 해내는 데 5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소에 조금씩 해두면, 금방 했을 일들을...

내가 얼마나 게을렀다는 것인가~~~~




이제 12시부터 아이들 하원 4시 전까지 딱 4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집에 아무도 없고,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게 어색하고 불안하면서도, 약간은 흥분되는 일이다.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과, 매일경제 종이신문, 다 꿈 플래너와, 노트북. 이 얼마 만에 자유인가~

종이신문을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정독하니 금방 한 시간이 지나갔고, 주식 창도 열어보면서 주가도 확인하고, 부동산 책도 일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만의 시간은 정말 행복해....




꿀 같던 네 시간이 지나가고, 아이들을 하원 시켰다.

올 3월에 입학 학 우리 둘째. 오늘 둘째 아이가 버스 타고 하원 하는 모습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갑고, 미안하고, 기특하던지...

아침에 분명히 이쁘게 머리 묶어 보냈는데,,, 임꺽정 머리로 부스스 산발이 되어, 하원한 둘째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격하게 놀았나 보구나..

오랜만에 아이들을 놀이터에 데리고 갔다. 하원 후 놀이터에 데려가는 건 3월 들어 처음이었다.

제법 날씨가 추웠는데, 어찌나 잘 뛰어놀던지...


그래. 이 엄마가~ 야간 근무로 힘들지만, 좀 못 쉬고 출근하면 어때. 너희들만 즐거우면 됐지.^^




나이트 근무 첫째 날!

인계 끝나고 일 시작 전, 힘내고 일하려고, 환자분이 주신 비타민 음료를 마셨다.

아가씨 때는 이런 비타민 음료는 거들떠도 안 봤는데, 이제 일하기 전 한 병씩은 꼬박꼬박 마신다. 그래야 왠지 힘이 날것만 같아서.

나이트 근무가 꼭 힘든 것만은 아니다. 잠을 많이 못 자고, 패턴은 엉망이 되지만, 일의 강도가 데이나 이브닝 때만큼 많지 않고, 비교적 여유롭다. (병원마다 다름)




환자분들이 잘 주무시는지, 수액은 잘 들어가는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라운딩 하면서, 독서도 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여유를 찾아본다.!


아가씨 때는, 나이트 근무하고 퇴근하면 10시간 이상씩 자고, 내가 원하는 만큼 잠자고, 하고 싶은 일도 다하고, 돈도 마음껏 쓰고 그랬었다.

그러나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야간 근무 출근 직전까지 항상 바쁘다. 그래도 행복하다.


이쁜 딸들이 있고, 듬직한 신랑이 있고, 일할 수 있다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평온한 나이트 근무를 무사히 끝마치길...^^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