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의학 드라마에서 보면 외과에서 수술도 하고, 뭔가 로망이 있었다. GS (general surgery) 일반외과 병동에서 일을 하면 내 경력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서류를 낼 때 GS 일반외과 병동으로 지원을 했고, 원하던 병동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같이 입사한 네 명의 동기가 동고동락하면서 버텼던 것 같다.
매일 혼나고, 눈치 보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 못 가고 일을 했어도, 동기들과 퇴근 후에 병원 앞 치킨집에서 맥주도 먹고, 윗년차 선생님들의 별명을 붙이며 험담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윗년차 선생님들의 별명 붙이기 대장이었다.
뚱미나, 삐사감, 빨간안경, 히틀러등등... 지금 생각해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그게 낙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약간 통통한 체형을 가지신 노처녀 선생님이 계셨는데, 맨날 무언가를 먹었다. 그리고 우리를 항상 혼내셨다. 짜증이 장난 아니었다. 특히 이쁜 애들한테는 더 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쁘지도 않았는데, 왜 괴롭히셨을까... 일을 못해서 그랬을까?
어느 날 30명 넘는 환자들의
V/S (활력징후)-혈압.맥박.체온등을 재는 일.
온몸에 땀이 흠뻑 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몸이 이상했다.
가만히 서있지를 못하겠고, 빙빙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내가 왜 이러지?"
"힘들어서 그런가? 이럴 시간이 없어. 빨리 하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혼날 거야"
비틀비틀거리면서, V/S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는데, 윗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신다.
"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체온을 재어보니 39.3 도....
몸살이 났던 거다. 나는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 날 구원해 준 선생님께 참 감사했다. 그것도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