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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Dec 28. 2020

어머 저 여자 좀 봐! 빨대로 맥주를 먹고 있어!

신규 간호사 이야기

13년 전 신규 간호사 때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물론 그때의 기억이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

때로는 대학병원이 그립기도 하다. 대학병원의 자부심과, 높은 연봉, 쾌적한 환경(시스템)을 가끔 누리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직장과 삶에 만족한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 3194556, 출처 Pixabay


23살, 어느 여름날, 유난히 힘들었던 날이다.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했었는데, 제일 긴장되었던 날은 바로 쌍둥이가 태어나는 날이다. 가끔은 세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물론 탄생은 축복이고, 기쁨이며, 선물이다. 그렇지만, 갓 입사한 신규 간호사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유인즉슨,

일단 쌍둥이는 제태 기간을 다 채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32.33.34 주 (또는 그 이하) 미숙아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상아들은 몸무게와 주수를 다 채우고 나오지만, 미숙아 아이들은 제태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숨쉬기 힘들어한다든지, 너무 작아 체온을 유지하기 힘들거나, 아픈 곳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쉽게 풀어서 씀)


간혹 아주 작은 아기들, 26주에 500g인 아기까지 봤었다. 그런 아기들은 자가호흡이 힘들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벤틸레이터 (ventilator - 인공호흡기)를 달아 줘야 하는데, 나는 그 벤틸레이터 세팅하는 게 그렇게 무서웠다.  갓 들어온 신규가, 줄이 주렁주렁 달린 벤틸레이터 조립을 잘할 리가 없다.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주수가 너무 작거나, 호흡이 힘들 것 같은 아기들이 나오기 전에 산부인과에서 연락이 오면  우리는 부랴부랴 아기 맞을 준비를 한다.

워머, 인큐베이터를 켜놓고, 벤틸레이터를 세팅해 두는데, 가끔 산부인과에서 연락도 없이 아픈 아가들이 나오는 경우에는 급하게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 28주 쌍둥이 응급 c/s입니다. 일단 벤틸레이터 세팅해 주세요"


신생아실에서 normal baby (정상 아가들) 우유를 먹이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워머 준비해. 벤틸레이터 세팅하고, intubation 준비해놔. surfactant 냉장고에 있는지 확인하고"


벤틸레이터 -> 인공호흡기

intubation ->기도 삽관

surfactant ->신생아 호흡 증후군 폐 포면 활성제

워머 -> 아기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이럴 수가. 벤틸레이터 세팅은 여태껏 딱 두 번 해봤었는데. 이걸 나 혼자 하라고? 막상 급하게 하려고 하니,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상한 곳에 호흡기 관을 연결해 놨고 그냥 다 엉망이었다.


"제발 누가 나 좀 알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동기야 나 좀 쳐다봐주라"

빌었지만, 다들 너무 바빠서 나를 봐주지 못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허둥지둥 어리바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선배님께서 드디어 나를 보셨다.


" 이거 이렇게 해야지. 저번에 배웠잖아. 생각하고 일하니? 너 조금 이따 보자"


일단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급한 불은 껐고, 쌍둥이 중 한 명은 자가 호흡이 가능해서, 벤틸레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상황도 마무리가 잘 되었지만, 선배에게 혼날 것이 너무 걱정되어서, 결국 밥도 먹지 못했다.


"00야, 병원 다닐 생각은 있는 거니? 그러다가 환자 잘못되면, 어쩔래? 제발 생각을 하고 살아라. 난 너랑 일할 때 정말 답답해. 고구마 백 개야 "


나보고 고구마 백 개래...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고구마 백 개래.. 그리고 나 생각하면서 일했는데. 벤틸레이터 세팅이 그날로 딱 세 번째였다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하늘 같은 선배님이었으니까!

갓 입사한 신규 3개월 차.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더 열심히 하리라. 다음에는 완벽히 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속상했다.


학교 다닐 때는 나름 장학금도 받고, 상위권 차지하던 나였는데, 병원에 입사하니 나는 그냥 바보였다.

어찌어찌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을 했다.

퇴근하는 길, 전철역 옆에 편의점을 발견했다. 속상했다.

맥주라도 딱 한잔하고 싶었다. 같이 먹을 동기는 근무 중이어서 나 혼자뿐이었다.


© theshuttervision, 출처 Unsplash


편의점에서 맥주 500ml 하나를 사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빨대를 하나 챙겨 나왔다. 어디서 들으니 맥주에 빨대를 꽂아 먹으면 금방 취한다고..

23살 꽃다운 나이였고, 외모와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할 20대였지만 그날만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앞 테라스에 앉아서 맥주에 빨대를 꽂아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울음이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반 정도 울상이 되어서 말이다.


"어머 저 여자 좀 봐. 맥주에 빨대 꽂아 먹고 있네. 혼자. 왜 저래? 웃기다"


분명히 들었다. 나보고 웃기단다. 그때는 조금 창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들이 봤을 때는 웃길 법도 했다. 13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그날 입었던 옷은 ck 엉덩이 주머니에 보석이 달린 청바지와, 빨간 카디건, 그리고 입사하고 첫 월급으로 샀던 구찌 가방. 아주 생생하다.


한 번은 퇴근길에, 전철에서 울었던 적이 있다. 병원 다니기 너무 힘들다며, 친구랑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때 옆에 계시던 인상 좋은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가씨. 뭐가 힘들어서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힘내요. 세상에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은데.."


그러면서,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그 아주머니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쓰자면, 에피소드가 아주 많다. 아마 밤새워서 써도 모자랄 것 같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있는 게 분명하다.


ps, 혹시 내 글을 신규 간호사 분들이나, 간호대 학생이 보신다면, 너무 겁먹지 말아 주세요. 제가 일을 못해서 그런 거랍니다. 꼭 병원이 그런 곳 만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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