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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Jun 01. 2024

마지막에는 그래도 ---

감성 에세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긍정적 의미로 쓰는 때도 있으나 대개는 부정적 의미의 비유를 할 때 더 많이 쓰인다. 오사카 여행 2일 차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번 오사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교토’인데……. 숙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일본말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1호 태풍 일본 열도 강타’라는 자막이 보였다. 교토 지역의 예상 강수 확률은 100%. 아니나 다를까? 오사카에서도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가이드가 그의 아내에게서 들었다는 말에 의하면, 일본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던 한국 사람 두 명이 늘어난 빗물에 휩쓸려 사망한 사실이 일본 전파를 탔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거리를 달리니 빗줄기가 차창을 거세게 때렸다. 이날의 첫 번째 목적지는 청수사(淸水寺). 교토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꼭 들러보는 필수 코스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가이드가 말했다.

“청수사(淸水寺) 입구까지 버스로 가려면 비가 많이 와서 정체되어 1시간 이상 소요될 거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가까운 길거리에 버스를 세우고 걸어서 가도록 하지요.”

비가 많이 오는데 걸으라는 말에 짜증을 낼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군말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사거리 신호등을 두 번 건너서 이윽고 청수사(淸水寺)로 올라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더 걸리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걸었다. 비는 더욱 거세어졌다. 청수사(淸水寺)로 가는 보도는 내려가고 올라가는 사람이 겹쳐서 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많은 비가 쏟아져 우산을 썼으나 신발이며 옷이 모두 젖었다. 청수사(淸水寺) 버스 공용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차들은 세찬 비 때문인지 거북이걸음을 했고, 주차장을 지나다 보니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보고 다 온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주차장을 지나 또다시 신호등을 건넜다. 그 길 양옆으로 기념품이며 아이스크림 등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로 인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우산끼리 부딪치며 한참을 올라가니 청수사(淸水寺) 입구가 보였다. 가이드가 빗속을 뚫고 입장권을 구매하여 한 장씩 나눠줬다. 비가 많이 오니 우리는 보는 둥 마는 둥 그저 순로를 따라 서둘러 걸었다. 청수사(淸水寺)가 괜찮은 여행지라지만 빗속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반면 비가 이어졌으나 청수사(淸水寺)에서 버스까지 되돌아갈 때는 한 번 갔던 길이라 그런지 그렇게 길지 않게 느껴졌다.


두 번째 간 곳은 ‘아라시야마’였다. 한량 짜리 전철을 탔다. 종점에서 타서 그런지 우리 일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리에 앉았다. 거의 30분에 걸쳐 여러 개의 역을 지나며 타고 내리는 일본 사람들을 쳐다보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아라시야마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비는 역시 세차게 내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러 관광지 중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치쿠린(竹林)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길 양옆으로 이어진 대나무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즐기는 휴양 명소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일부러 찾는 장소라고 했다. 아내는 이곳은 기본적으로 대나무 잎으로 인해 녹색이 많기에 흰색이나 빨간색 계열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흰색 상의를 입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사진 한 장을 건지지 못했다. 신발은 다시 물구덩이가 되었고. 쏟아지는 비를 피해 아라시야마 역으로 서둘러 돌아와 진한 커피를 마시며 빗속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교토에서의 마지막이 결정타였다. ‘아라시야마’까지 전철을 타고 갔으니 돌아갈 때도 당연히 전철을 타는 줄 알았다. 그렇게 기대한 까닭은 거기서 전철을 타면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 입에서는 버스를 타러 주차장까지 8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도 비는 주룩주룩 계속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다 보니 인근을 흐르는 개천은 그동안 쏟아진 빗물이 많이 늘어났는지 유속이 무척 빨라 보기에 무서웠다.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교토에서 버스로 고속도로를 타고 오사카로 돌아왔다. 서둘러 만들어진 이날의 마지막 일정인 일본의 3대 명성 중 하나인 오사카성과 오사카 공원 관광을 위해서. 천수각은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지 않았으나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었기 때문에. 


오사카성이 그래도 마지막 선물을 주려고 그랬는지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하루 종일 비를 맞은 벚나무나 소나무 등 공원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녹색의 싱그러움은 반대로 내내 비로 인해 힘들었던 고단함을 멋진 추억으로 돌릴 보상이 될 듯했다. 

‘여행에서 날씨가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이 이렇게 딱 맞는다는 걸 드물게 경험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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