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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Jun 03. 2024

한 여름 밤의 꿈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2021년 8월 첫 번째 목요일 새벽 열대야로 밤을 뒤척이며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50여 년 전 서울에 처음 이사 와서 살았던 허름한 집의 부엌이 나타났다, 연탄이 이십여 개 쌓여 있는 게 전부였다. 비가 오는 마당에는 아버지도 계셨다. 잠시 후 화장실, 아니 변소가 보였다. 흙을 파내고 양쪽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발판이 있는 아주 옛적 시골풍(?)의 모습이었다. 작은 웅덩이처럼 생긴 변소는 이미 X으로 가득 찼다.      

왼쪽 발판 바로 아래로는 가래떡 모양의 길쭉한 X가 한 줄 선명하게 보였다. 다른 X들이 한데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데 비해 그것은 모양이 반듯하였으며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지?’라고 복기해보니 꿈이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만 해도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변기에 앉으니 문득 그 꿈이 떠올랐다. 아침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X 꿈을 꿨는데……” 

식사 중에 X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질겁하던 아내가 인터넷을 찾아보고는 오히려 나를 부추겼다. 

“로또 복권 당첨자는 X 꿈을 꾼 사람들이 많네요” 

“그래”라고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도 혹시’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아내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꿈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 복은 사라지는 거래요.” 

“하지만 꿈 이야기를 들은 사람에게 복이 넘어가지요. 내가 그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 꿈을 파세요” 

“그렇게 합시다”     

대답은 했으면서도 확실하게 돈은 주고받지는 않았으니 꿈을 완전히 넘긴 것도 아니다. 어정쩡한 꼴이었다. 


밖에서 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아내와 함께 복권을 사러 가겠다는 일념으로 오후에 서둘러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창밖을 보니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어 금방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부을 분위기였다. 그래도 멀지 않은 곳이니 비가 오기 전에 잠시 갔다 오면 된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가는 도중에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번쩍번쩍하면서 우르르 쾅쾅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복권 판매점에 도착하니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없었다.     

“복권을 사려고 하는데요”

“무슨 복권을 찾으세요?”

“로토 복권!”

“옆에 있는 카드에다 원하는 번호를 표시해서 가져오세요”     

카드를 보니 어떻게 표시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번호를 표시해야 할지도 모르겠기에 그냥 사장님에게 가서 말했다. 

“하나는 다섯짜리 모두 ‘1’로 해주시고 나머지는 아무 번호로 해도 상관없어요” 

꿈에서 가래떡같이 길쭉한 ‘1자’ 모양의 X을 봤으니 모두 ‘1’로 표시하면 로토 1등에 당첨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 그렇게 이야기했다.     

복권 판매점을 나서니 쏟아지던 비는 지나가는 소나기였는지 이내 그치고 집에 가는 도중에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남쪽 하늘에 무지개가 뜨는 게 아닌가? 그것도 쌍무지개가 떴다.‘아! 이건 조상님이 나에게 로토 복권 1등을 당첨되게 하시려는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금요일 낮에는 불쑥 고향에 가서 조상님의 산소를 찾았다. 그중에도 내가 가장 존경하며 꿈에서 뵈었던 아버지께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며 인사를 드렸다. 서울로 돌아오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근거는 없지만 ‘로토 복권 1등 당첨’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상상의 나래도 끝이 없었다. ‘복권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야지.’     


그런데 그날 저녁 복권을 살펴보니 뭔가 이상했다. 복권은 다섯 개 조로 되어있었으며, 한 개 조는 7개의 번호로 구성되어 있었다. 복권을 구매할 때 사장님에게

“하나는 다섯짜리 모두 ‘1’로 하고 나머지는 아무 번호로 해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원한 거는 한 개조는 모두 ‘1’로 하고, 나머지 4개 조는 자동 번호로 표시하라는 것이다. 애초에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이다. 한 개조는 다섯 개의 번호가 아니라 일곱 개의 번호로 구성된 것을 몰랐던 거다. 반면 사장님은 ‘다섯짜리’란 소리만 듣고 다섯 개조에 모두 각각 ‘1’을 넣고 나머지 번호는 자동으로 표시하도록 이해를 한 것이다.     

내가 구매한 복권의 다섯 개조 모두에 ‘01’이 기본적으로 표시되었고, 나머지는 ‘02’부터 ‘50’번에서 임의의 숫자 6개가 적혀 있었다. 내가 의도한 조합의 숫자는 없었으니 ‘X 꿈이 개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타난 첫 번째 징조였다. 아내가 ‘꿈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 복은 들은 사람에게 넘어간다’라고 했는데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예전에 어머니들이 소원을 빌 때 ‘정화수’를 떠 놓는 심정만은 못하더라도 신중하고 신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패착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요일 아침에 인터넷의 복권 번호를 확인했다. ‘01’번은 한 조에도 없었다. 또한 구매한 복권의 다섯 개조 모두 두 개 이상 번호가 일치하는 것도 없었다. 5천 원, 아니 아내가 산 복권까지 모두 만원을 투자했으나 본전인 오천 원짜리 하나도 맞추지 못한 완전 ‘꽝’이었다.


3일간의 일장하몽(一場夏夢), 한여름 밤의 꿈을 꾸며 속물의 욕심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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