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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Apr 02. 2023

뒷배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토요일 오후 아내와 코스트코에 갔다. 정리할 게 있어 빨리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차를 몰고 집을 나서니 도로에는 의외로 차가 많았다. 코스트코에 도착하니 마찬가지로 차가 북적였다. 2층 주차장은 주차 공간이 없다는 표시가 보여 3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눈앞에서 한 대가 빠져나갔다. 후진으로 차를 대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그 위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2층에서 여직원이 소독을 끝낸 카트 한 대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가 매장 입구로 들어섰다. 장보기는 왼쪽에서 시작해서 전체 매장을 돌고 오른쪽에서 끝난다. 물건을 고르는 건 전적으로 아내의 몫. 나에게 가끔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무엇을 살지 전혀 의견이 없다. 그저 카트를 밀면서 아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포터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예전에도 아내를 뒤따라가며 가끔 느꼈으나 오늘은 유독 아내의 발걸음이 당당했고 자신만만하게 매장을 누볐다.

     제일 먼저 카트에 담긴 물건은 액체 세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여 가서 목표물을 바로 낚아채서 카트를 끌고 따라가는 나에게 손짓한다. 빨리 오라고. 다음으로 이동한 장소는 매장에서 가장 서늘한 유제품 코너. 우유 한 통 그리고 달걀 한 판을 잽싸게 카트에 담고는 신속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잠시만 머물러도 한기를 느끼게 되니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는 30초 이상 머물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 미리 사려고 작정한 물건만 독수리가 먹잇감을 순식간에 낚아채듯이 손에 들고 바로 나왔다.    


그곳을 빠져나오고부터는 사람과 카트가 서로 엉기며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오늘은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그들이 카트에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한편으로는 아내를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아내는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한 팩씩 카트에 담았다. 무게가 얼추 비슷해 보였는데 가격표를 보니 가격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왜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비슷하지? 쇠고기가 훨씬 비싼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가 대답했다.

"쇠고기는 수입이고, 국산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서 그래요."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지 못하는 스스로가 멋쩍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데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아내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존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자신만만하게 다음 매장으로 걸어갔다.

과일 코너. 제일 먼저 아내의 손이 간 물건은 딸기. 열흘 전 몸살이 나서 곤욕을 치를 때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줬었는데……. 몸이 다 나았어도 아내의 딸기 사랑은 여전한 모양이다. 다음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바나나를 고르려고 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아내는 위쪽 상자에 담겨있는 바나나를 제쳐두고 굳이 아래 상자 속에 있는 걸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안 익었나 보네"라고 말하면서 바나나 사는 건 포기했다. 대신 사과 한 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야채 코너도 반드시 들르는 단골 장보기 코스다. 제일 먼저 아내의 손이 간 채소는 가지. 대표적인 보라색 채소 중 하나인 가지는 중성지방을 낮춰 혈액을 깨끗하게 해준다. 당뇨 수치가 높은 내가 꼭 먹어야 할 음식이다. 어렸을 때는 '뭉글뭉글'한 느낌이 싫어 먹기를 주저했었다. 요즘은 아내가 자주 식탁에 올리다 보니 먹기에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가지가 담겨있는 포장 박스를 보니 영어로 'eggplant'라고 적혀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가지가 달걀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건가? '친환경'이라고 쓰인 매운 고추와 깐 마늘 그리고 송이버섯도 속속 카트 속으로 들어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예전에 아내는 와인코너를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저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하며 카트를 밀고 아내 뒷 꽁무니를 따라가니 가공 음료 코너로 갔다. 내가 며칠 전 변비로 고생한 걸 기억했는지 "이거 먹어볼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장에 좋다는 바이오블루베리 한 상자를 꺼내 카트에 담았다. 포터 역할을 하는 맛이 났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곡물 코너. ‘10Kg 짜리’ 쌀이 아내의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주쌀>이 아니고 <아끼바레쌀>이라는 상표가 붙은 파주쌀이다. 고향인 '여주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장보기에서의 선택권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있기에 군말 없이 '접수'. 곡물도 한, 두 종류를 사는데, 이번에는 노란 색깔의 기장쌀이 마지막으로 카트에 합류했다. '좁쌀영감' 할 때 쓰는 그 좁쌀이다.


계산대에서 카트에 가득 실은 물건값을 치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신만만했다. 매장을 다닐 때도 그랬다. 뭐가 그렇게 아내를 신나고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나, 든든한 남편을 카트 포터로 부리는 사람이야! 알았어요?"라고 아내가 생각하지 않을까?

잠시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있다가 서둘러 카트를 밀며 아내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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