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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Apr 14. 2023

이쁜 심장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두 달여 동안 가슴이 묵직한 맷돌에 눌린 듯 답답했다. 지난 3월 초에 종합병원 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한 후에 생긴 증상이다. 아내의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통보받은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세 번에 걸쳐 검진센터와 병원을 오가며 검사했던 최종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다. 하늘에서도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그제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추적추적 이어지고 있었다.

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아내는 다른 검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위·장 수면내시경 검사를 꼭 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종합 검진이 다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검진센터 로비에서 만났을 때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물으며 의아해하니 아내는 심전도 검사실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담당자는 심전도 검사를 하다가 아내의 심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단다. 심장의 크기가 정상보다 커져 있으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증상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건강검진에서 그런 증상이 발견되면 위험해서 마취제가 투여되는 수면내시경 검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종합병원 심장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먼저 받고 이상이 없으면 위·장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내내 아내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태평한 표정을 했으나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그다음 주에 아내와 함께 검진센터가 예약해준 대로 종합병원 심장내과를 찾았다. 진료를 하는 게 아니고 단지 검사 일자를 조정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때도 담당 의사는 검진센터의 심전도 결과를 보면서 역시 아내의 심장에 나타난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고 겁을 줬다. 검진센터에서 예약해줄 때 그 의사는 많은 환자가 찾는 명의라고 했다. 그러니 검진센터의 심전도 검사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그의 소견이 ‘절대로 맞겠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가 진료를 잘하는 의사라서 그런지 3월과 4월에는 예약이 꽉 차 있어 아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예약 가능한 가장 빠른 날이 5월 7일이었다.


     드디어 5월 7일에 아내는 나와 함께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아내는 당사자이니 ‘자신의 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하지’라고 속으로 많이 걱정했을 것이다. 나 역시 병원에 가는 내내 그리고 아내가 검사를 받는 동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내는 이번에는 심전도 검사는 다시 하지 않았고, 심장 CT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이리저리 검사를 받으러 이동할 때 나보다 훨씬 침착하고 씩씩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검사 결과를 보러 세 번째로 병원에 갔다. 오후 3시 예약이었지만 30분 이상 일찍 도착해 접수하니 아내보다 앞선 대기 환자가 9명이 있었다. 한 시간여를 기다렸나? 4호 진료실에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가 먼저 들어갔고, 이어서 나도 보호자 자격이지만 긴장한 채 뒤따라 들어가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의사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지난번 검진센터의 심전도 검사 결과를 보고 이야기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초음파 검사와 CT로 촬영한 아내의 심장은 너무나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심장의 모양이 너무 이쁘다'라고 하면서 모니터로 아내의 심장을 보여주었다. 기쁘기는 했지만 속으로 어떤 상황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 상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를 알려주니 이렇게 반문했다.

“심전도 검사로는 심장이 커졌으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증상이 있다고 했잖아요.” 

이에 의사는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심전도 검사를 할 때 여성의 경우는 XX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결과가 많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두 달여 동안 걱정하며 마음 졸였던 긴장이 확 풀렸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심전도 검사로는 심각한 증상이라고 통보를 받았었는데, CT 촬영과 초음파 검사에서는 아주 정상적이고 예쁜 심장이라니! 


     반전의 기쁨은 두 배였다. 걱정은 아내와 나 둘 다 서로 조심스러워 마음속으로만 했다. 반면, 기쁨은 부담 없이 바로 얼굴이나 감정으로 표시할 수 있다. 아내의 예쁜 심장을 확인하고 우리 부부는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쁨을 만끽했다.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니 그 효과는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닐까?


     병원 밖으로 나오니 아내의 예쁜 심장을 축하해 주는 듯 비는 이미 그쳤으며 하늘은 파랗게 빛났다. 걱정에서 벗어난 아내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으나 훨씬 밝아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 예쁜 심장을 가진 사람의 짝지야!”

하루라도 빨리 아내가 그토록 원했던 위·장 수면내시경을 받을 수 있도록 다시 건강검진센터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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