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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Apr 17. 2023

보내는 마음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일 년 전 어느 주말 하루에 두 군데 결혼식을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결혼식 자체가 연기되거나 소수의 하객만 참가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지인 자녀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고 말았다. 그때는 친한 옛 직장 동료와 고교 동창의 자녀가 결혼식을 올렸기에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다. 


     오후에는 직장 동료의 딸이 혼례식을 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나 다른 이유도 겹쳐 하객의 규모는 단출했다. 신부도 작지 않은 키지만 신랑은 더 훤칠했다. 미국 IT 회사에 다니는 인재라고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신부 엄마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나하고는 안면도 있었지만 끝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많지 않은 직장 선배와 동료들은 신부의 아버지에게 왔다는 인사 표시만 하고 그 자리를 떴다. 나 역시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식장으로 입장한 후에 두 명의 동료와 함께 바로 밖으로 나갔다.

     저녁에는 서초동의 한 예식장으로 갔다. 고교 동창의 아들이 결혼하는 곳이다. 예닐곱 명의 친구가 이미 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주에게 ’축하한다‘라고 인사했다. 여기는 나이 많은 아들이 늦장가를 가는 거라 그런지 싱글벙글하는 분위기다. 친구인 신랑 아버지가 그의 아내에게 “고등학교 동창 김학서야!”라고 소개했다. 여기서도 식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 모두 신랑 아버지에게 다시 인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코로나 시국에 흔치 않게 하루에 ‘하나는 딸을 보내는 혼사, 또 하나는 아들을 보내는 혼사’를 다녀왔다. 두 군데 혼사를 보면서 문득 ‘떠나는 아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떠나는 아이들은 아들이건 딸이건 모두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사랑하는 반려자와 함께 인생의 주인공으로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날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신랑, 신부들의 친구와 직장 동료 그리고 부모들의 친척, 지인들이 모두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주인공들‘에게 아낌없이 축하해 줬다.

     반면 떠나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시원섭섭하다’라는 말도 부모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표현으로 보인다. ‘속이 후련하다.’ ‘한시름 놨다’라는 마음도 있을 터. ‘아깝다’, ‘더 데리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딸을 가진 부모가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인 사위를 본 엄마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저녁을 먹고 나니 시간이 꽤 늦었다.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맞은편 자리에서 나이 든 어머니와 젊은 아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불현듯 37년 전 내가 결혼할 때 일어났던 사건이 떠올랐다.      

     ‘새로 출발하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할 때 느끼는 감정과 똑같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하나의 마음이 더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부모님을 떠나는 특별한 ‘이별 의식’이 있었던 게 생생하다. 결혼식 당일 아침에 나도 모르게 집을 나와 약 300m를 걸어 큰길까지 나갔다. 거기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잠시 ‘꺼이꺼이 흐느끼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도 그렇고 왜 그렇게 감정이 폭발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도 30년을 정성 들여 키워주신 부모님을 떠나야 한다는 죄송함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치른 ‘이별 의식’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될 뿐이다.


‘보내는 마음’은 오히려 담담했다. 3년 전 큰아이에 앞서 둘째가 먼저 결혼했다. 순서가 바뀌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짝을 지어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도리라고 여겼다. ‘순서’보다는 ‘의무이행’이 중요했다. 많은 친척과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한 둘째 아이와 며느리가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아직 손주를 안겨주지 않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리고 당시 그 아이도 나와 같은 이별 의식을 했을지 궁금하다.


은퇴를 전후한 부모 세대들은 아이들에 관해 비슷하게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에도 나이가 꽉 찬 아들이 하나 있으니 한 번 더 ‘보내는 마음’을 느껴야 한다. 이 아이까지 마저 보내면 그때는 ‘집이 텅 빈 거 같아 마음이 허전할까? 아니면 의무를 다 마쳤다는 홀가분한 기분에 속이 시원할까? 

아마도 한 마디로는 “만감교차(萬感交叉)”가 가장 적절한 표현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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