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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Apr 18. 2023

새해 선물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신축년 마지막 날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서다 무지개를 보았다. 계단 동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들어와 벽면에 비추어진 것이다.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을 열어보니 치과에서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이지?’하며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했다.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김학서라고 하는데요. 전화했었네요.”

     “네, 사장님! 보건소에서 다음 주에 통보가 갈 텐데 놀라실 것 같아 미리 연락드렸어요.”

     “무슨 일인데요?”

     “지난 수요일에 우리 치과에 오셔서 치료를 받으셨지요. 그런데 그날 확진자가 발생했어요.”

치과에는 세 명이 있었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 그중에 간호사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통보를 받았고, 의사와 나머지 한 명도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사실 그 치과는 직장에 다닐 때부터 갔던 단골 병원이다. 임플란트한 후에는 그 무서운(?) ‘스케일링’을 하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방문했었다. 그러다 2020년 초에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그게 무서워 발길을 끊었었다. 

특별히 그날 거기에 가야 할 이유가 없었으나 하필 가서 치료를 받았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전화했던 간호사가 확실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10분 이상 나를 ‘스케일링’ 치료했던 또 다른 간호사가 확진된 게 분명했다.


     외출했다 들어오는 아내에게 “치과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연락 왔어.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바로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니 임인년 마지막 날의 추위는 매서웠다. 찬 바람을 뚫고 먼저 간 곳은 00 종합병원. 오다가다 보니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입구로 들어서니 코로나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어떻게 오셨냐”라고 물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검사하라는 통보를 받고 왔다’라고 했더니 여기는 사전 예약한 사람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며 보건소로 가보라고 했다. 다시 지난해 봄에 콧물이 나서 자발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 보건소로 향했다. ‘검사받으러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아요’라는 아내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마스크 속으로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걸어가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결국 한참 걸어가다 약 800m 정도 남겨두고 택시를 탔다.

      


     지난번에 검사할 때 두, 세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추위에 손을 떨며 온라인으로 신청서 작성하느라 걸린 3분 정도가 다였다. 접수대에서 신청자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이어서 옆에 있는 검사실로 이동해 자리에 앉으니 담당자로 바로 진단 키트를 왼쪽 콧속으로 찔러 넣었다. 2∼3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토록 꺼렸던 확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는 24∼48시간 이내에 문자 발송>이라는 안내문을 받고서 끝이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확진자가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지?’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메웠다. 


     우선 아내와 아들이 걱정되었다. 아내는 “이미 같은 집에서 같이 생활했는데 어쩌겠느냐”라고 말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이미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저녁도 따로 먹고 잠도 다른 방에서 따로 자겠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했다. 늦게 귀가한 아들을 보고도 쥐가 쥐구멍에서 나서지 못하고 숨어있듯이 그냥 내 방에서 나가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아내와 함께 우리 집에 왔다가 ‘내가 확진자를 만났다’라는 소리를 듣고 기겁하듯 문을 나섰던 막내 처제도 떠올랐다. 만약에 확진자가 되면 그동안 조심조심했던 그녀에게 대역죄인이 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수요일 이후에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가장 걱정되는 일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선에 걸려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잠시라도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은 사실과 그 이유’를 알렸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라 안부를 겸하는 인사로 자연스럽게.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잘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서재에서 따로 잤다. 추운 날씨라 그런지 두꺼운 이불을 덮는 건 당연하고 윗옷까지 그대로 입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화장실에 가는 일도, 양치질도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해 첫날 일과처럼 카톡을 열었다. 8시 15분에 보건소가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24∼48시간 이내에 검사 결과를 문자 발송한다고 했는데 벌써’ 하며 메시지를 클릭했다. <김학서님 코로나19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해가 시작되면서 가장 받고 싶었던 ‘새해 선물’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 잠시 본 무지개 덕분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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