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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Jun 15. 2024

저놈이 그 새야?

감성 에세이

     어릴 때 5월이면 집 건너편 앞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하고 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때만 해도 그 소리가 참 정겨웠다. 하지만 뻐꾸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서울로 전학을 온 이후 우연히 TV에서 뻐꾸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요지는 뻐꾸기가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때까치, 멧새, 할미새, 종달새 등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건 뻐꾸기알에서 부화한 새끼가 원래 둥지 주인 새의 알이나 새끼를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뻐꾸기 어미 새는 물론, 심지어 원래 둥지의 주인 새가 뻐꾸기 새끼에게 자기 새끼인 듯 애써 잡은 먹이를 물어다 정성스레 주었다. 그러한 뻐꾸기의 행태를 알고 난 후부터는 그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리지 않았다. 작고 둥근 몸과 짧은 부리, 그리고 긴 꼬리가 특징인 뻐꾸기란 놈이 그저 ‘깡패 새구나’라는 이미지만 강하게 남았다. 

사진 출처 : Pixabay

 


     앞산 밑에 있는 논에는 농부들이 모내기를 막 끝내고 나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어린 벼가 봄바람에 맞춰 살랑살랑 춤을 췄다. 마치 ‘이제는 내 세상이야!’라고 말하며 뽐내듯이. 그 사이사이로 하얀 백로가 노닐고 있었다. 급할 거 없이 유유자적하게 걸어 다닐 때 보면 영락없는 고고한 선비의 자태였다. 가끔 고개를 숙여 물속으로 주둥이를 넣었다. 미꾸라지도 낚아채고 우렁이도 쪼아대는 동작이겠지. 내 눈에는 아주 품위 있게 마치 신선놀음하는 것으로 보였다. 논에 가득 채워져 찰랑찰랑하는 물과 연두색 어린 벼 그리고 하얀 백로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가장 농촌다운 모습이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3월 초이니 찬 바람의 예리함은 무디어졌으나 아직도 봄은 더 기다려야겠지. 그래도 봄이 성큼 다가왔으려니 하는 기대감으로 올림픽공원에 들어섰다. 개천가를 따라 개나리가 노란 꽃을 피워내 봄의 전령사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덕 중턱에도 노란 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산수유가 ‘나도 있어’라는 듯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길가에는 듬성듬성 목련 나무가 하얀 꽃을 활짝 퍼뜨리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직은 회색빛이 훨씬 많은 잔디밭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천 물속에서는 오리 가족이 한참 먹이를 찾는지 연신 머리를 처박았다 올렸다 했다. 물이 거의 비어 있어 채우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듯한 호수에서는 백로 서너 마리가 한가롭게 이리저리 발길을 옮겼다. 그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지난해 이맘때도 호수 안에서 백로가 유유자적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보았다.      

     호수 건너편에는 나이가 꽤 되었을 나무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목 상태인 나뭇가지 위로 군데군데 까치집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백로 한 마리가 까치집 위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몇 마리는 그 주위의 나뭇가지에 앉아 호위하는 듯했다.

“백로가 왜 까치집 위에 앉아 있지?”

     마음속으로 의아해하며 그곳을 지나는 순간 까치 한 마리가 그 까치집 주위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백로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까치를 공격했다. 자기 집이라고 여기고 다가갔을 까치는 바로 꽁무니를 내리고 날아갔다. 백로의 덩치가 훨씬 커 먹이 사슬의 상위에 있어서 그런지 까치는 조금도 대들겠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백로에게 자기 집을 자기 집이라고 하며 대들기는커녕 찍소리도 못하고 쫓겨난 까치는 엉뚱한 데로 가서 화풀이했다. 근처 땅바닥에서 앉아 있는 비둘기 가족에게 날아가 공연히 심통을 부렸다. 비둘기 가족이 오순도순 먹이를 쪼아 먹고 있는 가운데에 불쑥 내려앉아 푸드덕거렸다. 놀란 비둘기 가족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져 날아갔다. 까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람들을 향해서도 씩씩거렸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와서 눈 흘기는 격’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빛을 시기할세라. 

깨끗한 물로 기껏 씻은 몸이 더렵혀질까 걱정이구나.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백로가>라는 시조다. 속 깊은 뜻이 따로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까마귀에 비해 고고한 ‘백로’를 노래하고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백로’는 신사같이 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새라고 여겼는데,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은 기분이다. 마치 뻐꾸기의 비정함을 처음 알았을 때처럼.     

사진 출처 : Pixabay

“저놈이 예전에 알던 그 백로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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