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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Jun 22. 2024

그녀는 왜 그랬을까

감성에세이

2022년 10월 두 번째 토요일 코로나 때문에 3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방통대 대학원 동문을 혜화동에서 만났다. 저녁 식사 후 버스로 이동하여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5호선 지하철을 갈아탔다. 타자마자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약 10분 후 지하철은 <왕십리역>에 도착했으며 출입문이 열렸다. 주말 저녁 시간이라 탑승객은 별로 없었다. 타는 사람 중 등에 배낭을 메고 강아지를 품에 안은 60대 남자가 단연 눈에 띄었다. 그는 지하철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철퍼덕하고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동시에 품에서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강아지의 머리를 힘껏 쳤고 바로 취침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보며 ‘나이 든 사람이라 저렇게 무신경한가?’, ‘낮에 등산하며 술 한잔 했나?’ 등을 속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 강아지는 주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가 두려워서 그런지 그의 사타구니 사이로 머리를 디밀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분도 채 되지 않아 ‘어휴, 갑갑해!’라는 듯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하얀 털의 강아지는 귀가 아주 작았다. 몸뚱아리에는 앙증맞게도 빨간 옷을 입고 있어 귀여워 보였다. 크고 검은 눈망울은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주인의 모습과는 대비되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60대 남성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20대 여성도 <왕십리역>에서 함께 탔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과 일행 같지는 않았으나 무슨 일인지 그녀도 60대 남성과 약간 간격을 두고 지하철 바닥에 앉았다. 물론 60대 남성과 달리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않았으나 젊은 여성의 행동이라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잠시 후 강아지는 60대 남자의 손길을 벗어났다. 그리고 지하철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발길 사이를 헤집고 킁킁거리며 앞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강아지가 움직이는 걸 발견한 20대 여성만이 지하철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재빨리 강아지를 쫓아갔다. 이내 강아지를 두 손으로 덥석 안았고, 60대 남성의 사타구니 사이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하철 바닥에 앉았다.

그는 비몽사몽 중에도 강아지의 온기를 느꼈는지 한 손으로 강아지를 움켜잡았다. 강아지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잠시 머리를 파묻고 얌전히 있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머리를 들어 주위를 살피다가 주인의 손길을 살포시 벗어났다. 또다시 처음과 똑같이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갔다. 무엇인가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주인에게 잡혀 있는 게 답답해서 그랬을 거다.

한편 60대 남성은 그녀가 데려다준 강아지가 다시 떠나간 줄도 모르고, 바닥에 그대로 앉아 잠의 삼매경에 빠졌는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20대 여성이 또다시 지하철 바닥에서 일어서 강아지 쪽으로 갔다. 이내 강아지를 양손으로 들고 다시 주인에게 갖다 두었다. 주인의 사타구니 속에 놓인 강아지는 이번에도 머리를 파묻고 얌전히 있었다.     

그러한 상태로 잠시 있다가 지하철은 <군자역>에 도착했다. 그 순간 60대 남자는 잠에서 깬 듯 머리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정차한 데가 목적지임을 확인했는지 강아지를 안고 헐레벌떡 일어나 막 닫히고 있는 지하철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60대 남성과 강아지가 갑자기 내리자 20대 여성도 바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내리지 않았고, 내 맞은편 좌석에 보이는 빈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으나 감은 눈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60대 남성이 지하철을 타자마자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잠을 자든지 말든지. 또 강아지가 주인의 품을 벗어나 바닥을 헤집고 다니든지 말든지. 지하철 안에 있던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 역시 방관자에 불과했다.

다만, 20대 여성! 그녀만이 강아지 주인, 아니 강아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지하철 바닥에 앉아 수호신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그녀가 원래 강아지를 위해 태어난 천사인데다가. <왕십리역>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인의 품속이었지만 뭔가 불안해 보였던 강아지와 이미 눈길이 마주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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