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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Jan 10. 2022

평온한 얼굴

요양원 가는 길


설날 구정 늦은 밤 23시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91세의 일기로 영면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곧 구정 설이 다가오니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네요.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상황을 거치며 정신없이 분주하게 지내다 보니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군요. 그 당시 가족들에게 평온한 얼굴을 보여주신 어머님의 고운 모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그날 그 밤, 모두가 바쁜 걸음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늦은 오후 요양원에 들러 얼굴을 마주했던 퇴근길도 그날 이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천일 간의 효행길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약 1000일 삼 년 간의 느린 삶을 이끌어주시고 평온한 얼굴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이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마에 깊게 파인 굳은 주름살도 희미하게 만드시고 눈을 살포시 감은채 우리 모두를 안심시키고 떠나가신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어쩌면 효행이라는 것도 결국은 남은 자식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울러 왜 이별을 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새삼 느끼고 있답니다.


어머니는 연로하신 몸으로 늘 노인정을 다니시며 하루 해를 보내셨지요. 그러다가 혼자 계신 집안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낙상 사고가 있은 후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 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로부터 의료기관의 신세를 지게 된 삼 년 간 퇴근길은 언제나 집이 아니고 요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지만 거기에 있는 환자들은 자유롭지 못하니 갇혀있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오는 중간쯤에 요양원이 있어서 퇴근길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들리곤 했습니다. 하루 해를 보내시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쌓이게 될 터이니 그 고단함과 답답함을 해소시켜 드려야 맘 편하게 집으로 올 수가 있었습니.


삼 년이라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 일을 쉽게 끌고 가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잘 드시고 있는지, 다른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혹시 간호사들이 챙기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려고 다닌 것 같습니다. 여섯 명이 같은 병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한 곳에 모여 다들 처지가 비슷하였습니다. 병실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식이 높은 사람도 있고, 식욕이 왕성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식사 시간에 혼자서 일어나 앉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보기에 저 환자의 가족은 매일 찾아와서 보살핀다는 이미지를 주려는 의도도 조금은 있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매일 병실에 다니다 보니 환자들 마다 저마다의 속사정을 알게 되고 누구든지 성한 사람이 같이 있으면 병실에서는 어떤 도움이든지 줄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욕이 왕성한 환자는 일어나 앉지를 못해 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데 힘들어 보조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그곳에 가게 되면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일으켜 세워 달라는 신호를 주기도 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으며 자식 자랑을 한없이 늘어놓기도 했던 분도 기억이 납니다. 또 같은 병실에 여럿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한 불평이나 갈등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함께 나누며 그것을 들어주는 역할도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환자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런저런 연유로 거의 매일 요양원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오랫동안 즐겁게 지속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또 다른 목적을 곁들여서 그 시간을 보내었답니다. 걸으며 운동이 되도록 하여 따로 운동시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도록 계획적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휴일에 집에서 출발할 때는 미리 집을 나서서 걸어서 요양원의 점심시간을 맞추도록 했답니다. 퇴근 시간에도 운동화를 착용하여 출근하면 컨디션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걷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즉, 얼굴을 마주하며 케어를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지만 결코 그 일이 내 생활의 리듬을 깨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여 일거양득이 되도록 한 거지요.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며 부모를 챙기는 젊은이들의 사례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부모를 섬기거나 효도를 가능하게 하는 트렌드라고 해도 될까요. 저는 그렇게 부모를 섬기고 마음에 위안이 되도록 한 일을 지금도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요즘도 간혹 부모님을 떠올리거나 제사가 다가와도 마음이 편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해야 하며 어떻게 하 것이 좋은지에 대해 다들 나름대로 답을 가지고 있겠지요. 옛말에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같습니다. 삶과 죽음은 쉽게 돌이키거나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차례를 지낼 때 효도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되새겨 봅니다. 평온한 얼굴을 떠올리며 늘 그 당시에 올바른 효행을 선택하고 실천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합니다. 효도를 해보세요. 덕을 쌓아보세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보세요. 각자의 처지나 위치에서 찾아보면 좋은 방도가 떠오를 것입니다. 절대로 억지로 효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크고 완전한 효도를 위해 미뤄두는 우를 범하지 마세요. 자식 위하는 부모 마음은 모두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오직 자식 잘 되길 바라며 평생을 자식들에게 바치는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살아서 옆에 계신 동안 효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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