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꿈 Aug 03. 2021

10화. 방학맞이 책거리와 장기자랑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시골 분교에서는 여름방학 종업식 전에 교실에서 책거리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악기 연주 등 장기자랑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다른 날과 달리 한껏 들뜬 기분이 되었다.


마을 부모님들이 종업식을 맞아 책거리와 장기 자랑하는 것을 눈치채고 전날 밤에 교실에 풍선도 달아놓고 격려하는 글도 칠판에 적어 놓았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역병도 이겨내고 있어 대견했던지 교실을 마치 잔칫집 분위기로 만들어놓았다. 아침에 달라진 교실을 본 아이들은 다른 날보다 일찍 등교하여 기분을 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우와~ 교실이 파티장 같아."

"하트 모양 풍선이 너무 예뻐. 나중에 핑크 풍선은 내가 갖고 싶어."

교실을 둘러보던 소녀도 한마디 했다.

"도시에서는 부모님들이 이렇게 할 시간이 없는데···. 너무 멋지다. 시골 분교가 최고네. 우와, 발표회 기분이 나서 너무 좋아."

아마도 책을 다 배웠으니 기다리던 책거리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게 되어 아이들은 모두 들뜬 기분이 된 것 같았다. 소녀도 장기자랑 발표 때문에 서울에서 방학 때 연습하려고 챙겨 내려온 바이올린을 교실에 들고 왔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예전에 보여줬던 그 악기와 닮았다며 소녀 옆으로 몰려갔다. 소녀는 친절하게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 바이올린과 활을 보여주었다. 책거리를 한다고 부모님께서 챙겨 줬다며 아이들은 옥수수와 감자 찐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 어떤 아이는 집에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을 삶아오기도 했고, 텃밭에서 따온 토마토랑 도시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작은 열매를 가져온 친구들도 있었다. 소녀는 자신이 특별히 챙겨 온 것이 없어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런데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손이 커서 그런지 챙겨준 보자기를 열어보니 수수떡이 가득 들어있어 기뻤다.


책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 날이라 아침 활동을 간단히 마치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각각 가져온 물병이나 선을 이용하여 운동장 뒤편 대나무 숲 근처 수돗가에서 물총놀이를 하였다. 남녀로 편을 나누어 물총놀이를 하며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곧 방학이 되면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우니 함께 뛰놀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아이들은 놀이시간이 끝나자 햇빛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모두 교실에 들어오자 장기자랑의 막이 열렸다. 장기자랑을 준비한 친구들은 발표 순서를 정해 여러 가지 평소에 익힌 것을 끼를 발휘하며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친구들은 평소에 배웠던 율동을 노래에 맞춰 춤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태권도로 운동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또 어떤 남자아이 둘은 대나무 숲 울타리에서 대나무 잎을 따서 풀피리로 노래를 연주하였으며, 여자아이 세 명은 리솔이가 풍금을 치고 둘은 모래톱 마을과 잘 어울리는 '섬집아기'라는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장기자랑 발표가 끝나갈 때쯤 되어 소녀의 발표 차례가 되었다. 소녀는 바이올린으로 '등대지기'를 연주했다. 강나루 남쪽 먼바다를 바라보며 소녀는 등대와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예쁜 자태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이며 지새우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 바다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소녀의 생소하기도 하고 현란한 손놀림에 흠뻑 빠져 있던 아이들은 잘 아는 등대지기 노래를 2절부터는 따라 부르기도 하더니 연주가 끝나자 큰 환호와 함께 목소리를 높여 앵콜을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여기저기서 앵콜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앵콜! 앵콜! 앵콜!"이라는 소리를 아이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외치고 또 외쳤다. 선생님께서도 새로 시골에 내려온 소녀를 격려라도 하듯이 앙코르를 합창하셨다. 갑자기 받은 앵콜 소리와 아이들의 응원에 신이 난 소녀는 앵콜곡으로 부모님이 좋아하는 곡이라며 '꽃반지 끼고'를 들려주겠다고 하였다. 소녀의 바이올린 앵콜곡 연주가 시작되자 갑자기 교실은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연주에 맞추어 어느새 고개와 발을 까딱까딱 놀리고 있었다. 긴 머리를 한 소녀의 가느다란 팔과 하얀 손으로 활을 움직여 바이올린 현에 능숙하게 마찰시키기도 하고 가끔씩 좁고 가녀린 어깨를 살짝살짝 움직이는 동작을 응시하며 아이들은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저렇게 가녀린 손동작에 악기는 꼼짝없이 묵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소녀를 닮은 듯한 가녀린 음도 낼 수 있다니 아이들은 그 모습이 아름답고 신기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이제는

가 버린 가 버린

아름다운 추억


생각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이제는

가 버린 가 버린

아름다운 추억




오솔길, 모래성, 바닷가를 표현한 소녀의 '꽃반지 끼고' 연주가 끝나자 또다시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앵콜을 연호하였다. 이어서 단이는 하모니카로 '오빠 생각'을 연주했으며, 친구들의 앵콜을 받아 '반달'도 연주하였다.


마지막으로 단이와 석이, 창의, 윤택이는 학교 음악실에 있는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준비하여 평소 국악 시간에 배운 사물놀이 연주를 멋지게 보여주었다. 남학생들은 우리 가락인 흥겨운 사물놀이 발표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단이와 친구들이 사물놀이 연주할 때 아이들은 자신들도 함께 익혀 온 사물놀이 연주를 손에 쥐고 있던 물건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추임새와 노래를 곁들여 연주를 따라 하기도 했다. 발표회가 끝나자 가져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선생님께서는 한 학기 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한 아이들을 격려하무섭게 퍼져 내려오고 있는 역병에 대해 주의도 당부하셨다. 또한, 교실을 잔칫집 분위기로 만들어주신 부모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와 소박하고 순수한 시골 인심은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에 커다란 지렛대 역할이 되기도 했다.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교문을 빠져나가는 재잘거림과 함께 바람결에 스쳐 갔다. 역병이 퍼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문도 있지만 이렇게 책거리라는 것도 하고, 각자의 끼를 발산시켜 또 하나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학창 시절의 추억 한 페이지를 간직하며 모두 총총히 집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이전글 9화. 신비스러운 섬의 전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