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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2. 2021

9화. 신비스러운 섬의 전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 소설이나 역사 이야기에 빠져 있기도 했던 소녀는 모래톱 마을 어른들이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했던 신비스러운 섬의 전설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소녀는 오후에 단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나갔다. 단이도 친구들이랑 마을 청년들과 함께 매년 해오던 강나루와 하천 주변 청소 봉사를 마치고 소녀를 만나러 강나루로 나왔다. 오후에 강나루에서 만난 둘은 며칠 뒤에 있을 책거리와 장기자랑에 대해 의논했다. 오늘 있었던 소녀의 첫 등교와 봉사활동 등 즐겁고 보람을 느꼈던 시간도 함께 얘기하며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한 친구처럼 서로 통하는 감정을 느꼈다. 소녀는 분교에서 매년 해왔던 책거리와 장기자랑은 어떻게 하는지 묻기도 하고 서로 무슨 종목을 발표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나누며 발표할 것을 정하기도 했다. 단은 친구들과 사물놀이 연주를 할 예정이라고 으며, 소녀는 서울에서 익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단은 소녀가 시골 아이들이 평소에 자주 접할 수 없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있을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소녀는 마을 앞에 있는 희미한 섬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물어볼 작정이었다.


소녀는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 소설이나 역사 이야기에 빠져 있기도 했으며 백과사전이나 식물도감을 틈틈이 즐겨 읽었다. 한 번은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을 읽고 부모님을 졸라 동물원에 가서 침팬지를 하루 종일 관찰하기도 했었다. 책을 통해 오랑우탄은 인간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을 가진 동물 중에서 가장 영리하고 모성애가 강한 영장류라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또한 오랑우탄은 고도의 지능은 물론, 감정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오랑우탄’이라는 말이 말레이어로 ‘숲 속의 인간(Oran Hutan)’을 뜻한다는 사실도 알아내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오랑우탄이 아시아의 자연유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서만 야생하고 있다는데 대해 소녀는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인간과 닮은 동물이 왜 그 섬에서만 살고 있을까?', '우리가 사는 땅에는 정말 그런 짐승이 없는 것일까?' 등 소녀는 이처럼 남들이 평소 등한시하는 신비한 일들에 대해 지적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많아 서울에 있을 때 학교에서 과학 박사로 통하기도 했었다. 


지난 봄방학 때 산골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는 숲 속과 계곡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 시골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소녀를 찾아 나선 적도 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그때 산골에 내려와 있으면서 식물도감으로 그림과 설명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어떤 식물이 자기가 내려와 있는 할머니 동네에 서식한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식물의 모양, 서식 장소, 환경 조건 등을 메모하여 산골 주변을 몇 날 며칠을 샅샅이 찾아보다가 깊은 계곡까지 들어가게 되어 길을 잃게 되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소녀는 결국 그 식물을 찾아내고는 어떤 생물도 생태 조건이나 환경이 갖추어지면 서식하게 되고, 그런 정보를 활용하면 모르는 곳에 있을지라도 과학적인  탐구 방법으로 발견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직접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소녀는 자신이 지리를 잘 모르는 산골에서 독서 정보에 의존해 도감에 나와 있던 식물을 발견했을 때 기쁜 마음에 숲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큰 환호성을 질렀다. 소녀의 환호성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정도로 발견에 대한 기쁨을 맘껏 표현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였다.


소녀는 똘망똘망한 예쁜 눈으로 단을 쳐다보며 어제 만났을 때 묻고 싶었 것을 꾹 참고 있었는데 묻지 못하고 헤어졌다면서 신비스러운 섬에 관한 얘기를 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이곳에 살 때부터 섬에는 전설이 있다고 해서 궁금한 점을 여쭈어봤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기와집에 내려와서도 외할아버지나 일꾼들로부터도 섬의 전설에 관해서는 어떤 대답이나 설명도 듣지 못해 궁금해 죽을 지경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단이도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섬에 대한 전설을 동네 형들에게 묻기도 했었지만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섬의 전설은 무시무시한 내막이 있으니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면서 단은 자신이 들은 일에 대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단은 마을에서 똑똑하고 대범한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동네 형들과도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던 단은 귀동냥으로 들었다면서 섬의 전설에 관한 일부분의 얘기를 소녀에게 들려주었다.


지금 살아있는 마을 어른들이 어렸을 때는 신비한 섬에 건너가기도 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모래톱 마을과 섬은 왕래가 끊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부모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섬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나돌았으며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했다. 신비한 섬에는 자신은 물론 동네 형들이나 부모들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섬은 언제나 안개에 휩싸여 있어서 정확한 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을 항해하는 배들이 침몰하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주변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부들도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읍내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 말로는 섬 뒤쪽에 이상하고 무서운 소리를 내는 동굴이 있으며 섬 주변 해저의 어떤 곳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해구가 있어 한 번 물속에 빨려 들어가면 헤엄쳐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인데 어떤 날 밤에는 희미한 불빛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소문도 전해 내려온다고도 했다. 윗대 선조 때부터 중요한 절기마다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맛난 음식과 술을 부유물에 묶어 섬으로 띄어 보내기도 한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섬은 전설로 남았고 이제까지 마을과 섬의 왕래는 끊겨있다고 했다. 지금은 무서운 소문 때문에 섬에 가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섬은 전설 속에 남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전설의 섬에 대한 얘길 들으면서 소녀는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그 섬에 대해 더욱 궁금증이 생겨났다.


신비한 섬의 전설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녀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겁을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단은 당황스러웠다. 소녀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은 그 섬에 꼭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마을 어른들이 들었으면 정말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은 자신은 무서워서 섬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단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섬에서 밤에 도깨비불이 보이기도 한다는데 언제 그것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단은 바다에 안개가 적은 날 밤에 도깨비불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였다. 소녀는 단에게 도깨비불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걸하며 졸랐다. 단은 섬의 불빛 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는 듯하였으나 소녀 앞에서 차마 내색할 수가 없었다. 소녀는 큰 눈망울을 가진 가녀린 몸매였지만 대범하고 무서움이 없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믿고 따르는 모래톱 마을의 겁 많고 순진한 아이들과는 영 딴판이어서 단은 신기한 듯이 소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언제 섬에서 불빛 나는 것을 볼 수 있을까?"라고 하며 소녀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어디서 보면 잘 보이는 거야?"라고 재촉하며 소녀가 또다시 묻자

"우리 학교 뒷산 중턱은 올라가야 보인다고 했어."라고 단은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너도 도깨비불을 본 적이 있어?"

"응, 딱 한 번 형들과 같이 학교 옥상에서 까치발을 하고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무서웠어."

"우리 언제 밤이 되면 섬에서 보인다는 도깨비불을 보러 갈까? 다른 친구들도 같이."

"아이들과 같이 가서 소문이 나거나 마을 어른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하는 날엔 우리는 모두 마을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학교 다닐 때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방학하는 날이나 방학 중이면 모를까."

"그래, 좋아. 방학하는 날 도깨비불인지 아닌지 보러 가보자."라고 하며 소녀는 겁도 없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들떠서 말했다. 단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 가운데 프레임(frame)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인간의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되는데, 예를 들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되고 그럴수록 인간의 뇌리에 각인되어 더욱 강하게 남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신비스러운 섬의 전설에 대해 입막음을 하며 숨기게 되면서 아이들이나 소녀는 그것에 대해 더욱 관심이 생기게 되고 의문을 품게 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둘은 방학하는 날 신비스러운 섬의 도깨비불을 보러 산 중턱으로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소녀와 단은 헤어지면서 학교에서 있을 책거리와 장기자랑 준비도 잘해오라고 서로 격려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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