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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5. 2021

13화. 바다로 나간 아이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은 우연히 바다에 나가 푸른 바다가 붉게 변하는 적조현상을 관찰하였다. 육지에서는 역병이 퍼져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가며 난리이고, 바다마저 붉게 변한 걸 목격하며 이와 같은 재앙들이 누구의 탓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전설을 간직한 섬의 도깨비불을 보러 야밤에 소녀와 단이는 학교 뒷산 중턱에 올라갔다가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찍은 카메라 필름을 사진관에 맡겼는데 오늘 점심을 먹은 뒤 인화된 사진을 찾으러 사진관에 갔다. 섬의 도깨비불이 신기하여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섬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마다 이상한 형체가 사진 속에 희미하게 같이 찍혀 있었다. 단이는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사진을 보니 이상해. 우리 둘이 찍었는데 뒤쪽에 누군가가 또 찍혀 있어."

"어디 보자. 정말 그렇구나. 사진관에 다시 가서 물어보자." 소녀가 말했다.

둘은 사진관으로 다시 들어가 전설의 섬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사진사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진사는 되물었다.

"그곳에 세 사람이 갔니?"

"아뇨. 우리 둘이만 가서 찍었어요."라고 소녀가 말했다.

"······."

사진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두 사람만 갔다고 했더니 사진사는 세 사람이 찍힌 것 같다면서 보관되어 있던 필름을 다시 가지고 나왔다. 필름을 요리조리 햇빛에 비춰보고 사진 인화하는 곳에서 밝은 조명에도 비춰보더니 희미하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도 같이 찍힌 것 같다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와 단이는 알겠다고 하면서 사진관을 나와 강나루 하류 갈대밭 사이에 조성되어 있는 연못가로 갔다. 소녀와 단은 연못가 쉼터에서 아까 그 사진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그날 산 중턱으로 올라갈 때 만났던 심마니 할아버지가 말한 것도 그렇고, 사진사도 사진에 찍힌 사람이 희미하지만 세 사람이 찍힌 것 같다고 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전설의 섬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가사의한 무서운 소문들이 자꾸 떠오르고, 지난밤에 들었던 울음소리도 들리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면서 두 아이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소녀와 단이는 연못가 쉼터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때 석이와 친구들이 왔다. 소녀는 재빨리 쥐고 있던 사진을 숨겼다. 섬의 전설과 관련된 떠도는 소문도 많고 며칠 전에 찍은 사진에도 이상한 물체가 찍히기도 하여 소녀는 그 섬 가까이에 가보고 싶어 졌다. 역병의 창궐로 마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늘 마을 앞 강나루 근처에서만 지내던 소녀는 더 넓은 바다 쪽으로 나가고 싶었다. 역병이 산 너머 수도권에서 많이 퍼져 남도지방으로 번져 내려온다고 하니 드넓은 바다는 역병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소녀는 아이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어?"라고 하자 석이는

"방학도 되고 심심했는데 나룻배로 바다에 바람 쐬러 나가면 좋겠어."라고 했다.

"강나루에 나룻배가 두 척 남아 있어."하고 단이가 말하자

"남학생 세 사람이 타고 나갈 테니 단이는 은설이와 같이 나룻배를 타고 따라와."라고 석이가 말했다. 창의는 바다를 무서워하는 편이지만 석이나 윤택이는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것을 즐기며 바다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석이랑 남자 애들이 먼저 나룻배를 타고 갈대숲을 지나 바다 쪽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뒤따라서 소녀와 단이가 탄 나룻배도 바다 쪽으로 노를 저어 나가게 되었다. 단이와 단둘이 탄 배에서 소녀는 전설의 섬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먼저 단이가 물었다.

"사진 속 인물이 망부석에 새겨진 어부의 영혼일 수도 있을까?"

"공상과학 소설 같은 데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 라며 소녀가 말했다. 둘은 전설의 섬에 실제로 도깨비가 있는지 또 그런 도깨비들이 사진에 찍히기라도 하는지 등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비한 섬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이들이 탄 나룻배는 강 하류에서 아직 육지가 되지 못하고 밀물에는 사라졌다가 썰물이 되면 보이기도 하는 작은 모래톱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띄엄띄엄 있는 갈대숲과 잡초 무더기 사이를 지나 나룻배는 큰 바다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룻배가 지나온 강 하류를 되돌아봤다. 모래톱 마을의 집이나 학교가 멀리서 바라보니 그림처럼 자그마하게 보였다. 앞장서서 노를 저어가던 석이팀이 먼바다 한가운데쯤 갔을 때 더 이상 나가지 않고 배를 세워놓고 있었다. 뒤따라가던 소녀가 탄 나룻배는 석이가 탄 배 옆으로 살짝 붙여 두 배를 묶고 잠시 바다에 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 색깔이 이상하다면서 이런 바다는 처음 본다고 했다. 눈으로 보기에도 푸른색 청정 바다가 아니라 붉은 색깔을 띤 바닷물은 보통 바다와는 크게 달랐다. 장난꾸러기 석이는 손을 바닷물에 넣어보더니 냄새도 맡아보고 뭔가 플랑크톤처럼 작은 미생물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도 하였다. 겁이 많은 창의는 무섭다면서 빨리 마을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소녀가 예전에 책에서 읽은 것이라면서 환경이 오염되면 미생물이 서식하게 되는데 아마도 주변 바다의 오염으로 바다가 붉게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본 것은 바다, 하천, 호수 등의 물 색깔이 변할 정도로 플랑크톤이 많이 번식해 있는 상태를 말하는 적조 현상이었다.


육지에는 역병이 돌고 있고 바다에는 푸른 바닷물이 붉게 변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룻배 위에서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지 아이들은 서로가 가진 의문들을 이것저것 묻기도 하였다.

"자연이 인간들이 너무 욕심을 부린다고 야단을 치는 것 같아."

"사람들이 오염된 물질을 바다에 많이 버려서 바다가 병이 든 것은 아닐까?"

"역병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과 병균이 숨바꼭질하는 것 같아." 등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제각각 말하자 소녀도 한 마디 했다.

"육지에서 곳곳에 창궐하고 있는 역병이나 푸른 바다가 붉은빛으로 변한 것도 모두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산처럼 살고 물처럼 살고 바람처럼 살아간다면 이런 일들이 생길 수가 있을까?"라고 하며 이상한 일들이 세상에 생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책임이 클 것이라는 투로 얘기를 했다. 아이들은 모두 소녀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좀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나룻배의 이물을 마을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바다로 나간 아이들은 붉은 바다가 가로막아 더 이상 먼바다로 갈 마음이 사라졌다. 전설의 섬 쪽으로 가보고 싶었던 소녀는 더 가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나룻배가 원망스러웠다. 소녀는 왜 역병이 생기는지, 왜 푸른 바다가 검붉은 바다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또한, 전설의 섬은 왜 전설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지도 궁금했다. 소녀는 그 섬에 가게 되면 모래톱 마을의 전설이 된 이야기를 밝혀보고 싶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또 그런 사실을 입 밖에만 내어도 안 되었으며, 그런 말을 하게 되면 심지어 마을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니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늘은 나룻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지만 전설의 섬에는 가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꼭 바다를 건넌 뒤 섬에 상륙해서 전설이 생긴 까닭을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녀에게는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풀어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단이가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씩씩한 친구들이 많으니 바다를 건너 전설의 섬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룻배를 잘 다루는 아이들이 함께 하면 그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하며 이번 여름방학엔 꼭 전설의 섬을 탐사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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