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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5. 2021

14화. 우정과 우정 사이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의 우정은 마음 한편에 다락방 하나를 짓는 것일까. 창문을 달고 커튼을 쳐서 가슴속에 인형 하나를 키우는 것일까.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친구 사이의 정인 '우정'이라는 말도 떠올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보면 누구나 작은 다락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을 것이다. 다락방 천장에 유리창이라도 하나 달려있어 밤하늘의 여름철 별자리를 볼 수만 있다면 끝이 없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도 타보고, 백조자리를 바라보며 날갯짓도 따라 해 보았다. 알파(α) 별인 데네브는 지구에1500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높은 온도의 푸른 별이다. 태양의 몇 천 배나 되는 빛을 내보내며, 반경이 태양의 수 십배나 된다고 한다. 별자리 이야기에서는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약 30만 km를 진행하며, 빛이 1년 동안 진행한 거리는 1광년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데네브의 별빛은 얼마나 오래전에 보내온 빛이란 말인가. 끝이 없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우주의 신비나 그 전설은 누구도 쉬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백조자리

어린 시절 백조자리에서 제일 밝은 별 데네브(Deneb)를 유심히 관찰하며 한 마리의 아름다운 백조와 그 꼬리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백조자리의 모양선을 따라가며 백조가 양 날개를 넓게 펴고 목을 길게 내민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 밤하늘의 백조는 남쪽으로 흐르는 은하수 위를 날고 있었다. 남북을 가로질러 하늘의 강을 이루는 은하수를 건너보며 은하수 양쪽에서 견우와 직녀가 끝없이 서로 마주 보기만 하는 슬픈 사랑도 상상해보았다.


더운 여름날 바닷가 선창에서 엄마의 팔베개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으면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스르르 잠에 빠져들기도 다. 깊은 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 까닭 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뻐꾸기며 부엉이 울음소리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연민과 함께 한 편의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만들어주곤 했다. 세상의 모든 순간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꿈을 키우게 하는 기운이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산천은 매화며 산수유로 뒤덮여 모래톱 마을은 온 천지가 꽃잔치를 벌였다. 산과 들을 수놓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가 곁에 없으면 그때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나 외로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단은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은모래 빛 해변이 있는 가까운 섬으로 휴가를 떠났다. 모래톱 마을에 혼자 남은 소녀는 단이가 없는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부모님 곁을 떠나 시골 마을에 남아 낯선 환경에 적응을 시작했을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나 쓸쓸함이 소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럴 때마다 소녀의 꽉 막힌 듯 캄캄한 마음에 한줄기 빛을 준 사람은 좋은 친구인 단이었다.


그런데 이제 단이는 휴가를 떠나 마을에 없고 소녀는 혼자가 되었다. 며칠째 단이가 없는 시골 마을은 텅 빈 공허함으로 소녀의 가슴을 흔들었다. 모래톱 마을에서 적응하며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 것도 어쩌면 모두 단이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늘 곁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면 그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았다.



단은 은모래 빛 해변에서 가족들과 함께 텐트를 쳤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따라 오랜만에 해변으로 휴가를 왔지만 마음은 모래톱 마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단은 혼자서 가늘고 고운 모래 위를 걸으며 눈앞에 펼쳐진 하얗고 맑은 모래알이 소녀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닷가의 젖은 시새를 밟고 서서 맨발로 얕은 물에 발을 담가보기도 했다. 저 멀리서 통통배 한 척이 지나가며 하얀 포말로 파란색 도화지에 흰색 선을 그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통통배가 남긴 물결은 파문이 되어 단이가 발을 담그고 있는 곳까지 닿았다. 통통배가 남긴 잔물결들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이어져 뭍으로 다가오며 단의 맨발을 간지럽혔다. 단은 모래톱 마을에 혼자 남은 소녀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통통배가 남긴 파문이 맨발에 닿을 때, 마치 소녀가 자신에게 손짓하며 달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은 발로 물살을 더 느끼고 싶어 은모래 빛 해변의 더 깊은 곳까지 걸어서 들어갔다.


단은 떨어져 있었지만 왠지 소녀와 함께 해변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예전에 꾸었던 꿈속에서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선인이 설이라는 소녀를 바라보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단은 은모래 빛 해변에서 '꿈속의 설이가 모래톱 마을에 나타난 소녀란 말인가.' 라며 혼잣말로 되뇌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자신이 무지개를 타고 온 선인이 아니듯이 어찌 꿈속의 설이가 모래톱 마을에 내려온 소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단은 부정에 부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단에게 소녀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과 꿈을 향해 분발해야 할 자신을 일깨워 준 소중한 존재였다. 늘 우물  개구리처럼 토말의 끝자락에서 마을 아이들과 편하게 지내왔던 단에게 경쟁심을 부추겼고 대범함이 무엇인지 소녀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소녀는 단에게 긴장감을 주기도 했었지만 무료한 시골의 일상 속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은모래 빛 해변에서 소녀와 떨어져 있다 보니 그 빈자리가 실감이 났다. 단이도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소녀의 존재감에 스스로 놀라며 친구 사이의 우정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단은 해변을 거닐며 유난히 하얀 작은 고동과 조개껍데기를 몇 개 주워 텐트로 돌아왔다. 소녀의 환한 미소와 자신을 부르는 예쁜 손짓을 떠올리며 채집한 것들을 실에 꿰어 손 팔찌를 만들었다.



소녀와 단은 친구들이 같이 함께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좋지만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곁에서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것도 그렇듯이 건강도 그런 것 같았다. 창궐하여 퍼져나가고 있는 전염병으로 고초를 겪으며 건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 건강한 상태에서는 건강의 고마움이나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세상이 역병으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멀쩡하던 사람들이 소달구지에 실려 죽어나가게 되니 그제야 사람들건강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모든 세상 일들이 다 그런 것 같았다. 사람도 있을 때 잘해야 하고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 떨어져 각자 혼자 남은 소녀와 단 스스로를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둘은 혼자였던 지난 며칠 동안 서로에 대한 진실된 우정을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음을 느끼며 앞으로 더욱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고, 함께 어울리며, 믿음이 되고 힘이 되는 좋은 친구가 되기로 둘은 마음먹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녀와 단은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단단한 기둥 하나를 웠다. '사랑은 왔다가 가지만 진정한 우정은 영원하다.'라는 말의 의미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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