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꿈 Aug 07. 2021

16화. 탐험대, 그 섬에 가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소녀는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모래톱 마을에서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모험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탐험대를 꾸려 전설의 섬을 탐사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특했고, 나름대로 치밀한 탐사 계획도 수립하였다.


소녀가 돌아오기 하루 전에 단이도 은모래 빛 해변에서의 가족캠핑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석이, 윤택이, 창의도 창궐하는 역병을 피해 육지 쪽이 아닌 바닷가 쪽으로 체험활동을 하고 와서 그런지 얼굴이 시커멓게 탔으며, 특히 석이피부 전체가 거무튀튀해진 것 같았다. 어떤 아이들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햇빛 많이 태워 피부가 조금 벗겨진 아이들도 있었다. 장기자랑에서 '섬집아기' 풍금 연주를 맡았던 솔이라는 여자 아이는 그림도 잘 그렸는데 휴가지의 풍경을 그린 그림엽서를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가족끼리 휴가를 다녀온 뒤 남은 방학기간에 방학과제나 채집활동 등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개학일이 되려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온통 걱정뿐이었다.


전설의 섬에 대해서는 마을 어른들이 오래전에 겪은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지 않고 시시하며 절기마다 제사만 지내고 있었으니 아이들은 다들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속에 큰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묻지도 말고 그 일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지도 말라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덮어두고 지내온 것 같았다. 그런데 소녀가 마을에 내려오면서 단이와 도깨비불을 보러 간 일이나 각자 섬에 대해 들은 이상한 소문들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아이들도 전설의 섬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이 걱정하고 있는 전해 내려오는 소문들이 진실인지 그냥 떠도는 무서운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것이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난번에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적조 때문에 중간쯤에서 되돌아온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침 일찍이 그 섬에 가보는 것이 어떨지 모여서 궁리를 해보았다. 방학과제 중에 체험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니 전설의 섬에 대한 탐사보고서를 쓸 수만 있다면 과제를 해결하기도 좋았고, 마을의 고민거리를 풀 수도 있어 일거양득이니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소녀는 며칠 전 휴가 중 별장에서 있었던 등골이 오싹했던 무서운 경험도 떠오르고, 하루빨리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전설의 섬을 탐사하여 의문을 풀어보자고 단이를 설득했다. 단의 을 잘 따랐던 마을 아이들은 소녀와 단이 제안한 섬 탐사 의견에 대해 아이들도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고 있었던 터라 전설의 섬 탐사대를 꾸려보자고 했다. 섬 탐사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그 사실을 어른들이 알면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 비밀에 부치기로 조막손을 서로 포개어 맹세했다. 소녀를 비롯해 평소 잘 어울렸던 단이, 석이, 윤택이, 리솔이, 창의 등 여섯 명이 참가하기로 하고 탐사보고서를 쓰게 되면 방학과제를 공동으로 제출하기로 약속도 했다. 아이들은 어려운 방학과제 하나가 금세 해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뻤다. 어쩌면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될지도 모르는데도 아이들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소녀는 아이들에게 평소에 즐겨 읽었던 책 중에서 탐험대와 관련해 아는 것들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쥘 베른이 쓴 '15 소년 표류기' 같은 무인도 탐험대에 관한 책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읽은 것 같았다. 소녀는 무인도에 사는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도 읽었고, 동식물 도감이나 공상과학 도서를 많이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인도네시아의 어떤 섬에서만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이 사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고 했다. 단이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손 크루소'를 감명 깊게 읽고 자신이 만약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다음 날 강하류 연못가 쉼터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탐험대를 꾸리려면 우선 대장을 먼저 선출해야 한다며 누가 '전설의 섬 탐험대'의 대장으로 적합한지 의논하였다. 여러 아이들이 서로 의견을 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소녀와 단이 대장으로 적합하다고 하면서 둘 중에 한 명을 대장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때 소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탐험대 대장은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맡으면 좋겠어. 표류기 같은 모험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탐사하는 곳의 환경이나 지리를 중요시했던 것 같아."라고 소녀가 얘기했다.

"이곳의 지리는 우리 마을에 오래 산 아이들이니 그럼 누구지?"라고 창의와 리솔이가 동시에 말했다.

"아무래도 마을에 대해 잘 알고 똑똑하며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운 단이를 대장으로 추천하면 어떨까?"하고 소녀가 목로단을 대장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소녀와 단이 중에서 대장을 고르려고 했는데 소녀가 단이를 추천하니 다들 만장일치로 단을 탐험대 대장으로 정하였다.


전설의 섬 탐험대를 이끌 대장까지 정해졌다. 이제부터는 탐험대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대장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대장은 탐험대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하고 탐험대 활동의 성공을 이끌어야 하니 책임도 막중했다. 단은 대장 역할을 수락하면서 탐험대의 모든 결정은 대원 모두의 의견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탐험대가 갑자기 위험에 처하거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신속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는 대장인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는지 대원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모두 박수와 환호를 하며 대찬성이라고 했다. 또, 대장인 단은 과학도서를 많이 읽고 전설의 섬에 관심이 많은 소녀와 함께 의논해서 탐험대 계획을 면 좋겠다고 하면서 부대장으로 소녀를 추천하였다. 아이들은 평소 많이 의지하고 잘 따랐던 단의 설명이 명쾌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고 믿음도 주어 큰 박수로 찬성을 표하였다. 대장은 아이들 각자의 역할도 의논해서 정하였다. 석이와 윤택이는 바다를 잘 알고 있으니 나룻배의 이동경로와 상륙할 곳을 알아보는 역할을 맡았다. 리솔은 그림을 잘 그리니 전설의 섬 가까이 가면 섬의 모습을 그림지도로 그려 탐험대가 어느 경로로 이동할지 자세히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창의는 배가 섬에 도착하면 나룻배를 관리하며 탐험대가 돌아올 때까지 배의 안전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고 모험소설에 등장하는 표류기나 무인도 살아남기 등을 참고하여 탐험대의 출항일을 정해 대망의 탐험대가 출발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모두 헤어지고 단은 소녀와 따로 만나 출항일을 정하자고 했다. 소녀는 자신의 과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대장인 단에게 정보를 주어 탐험대 활동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우선 섬을 탐사해야 하니 밀물과 썰물에 따른 조수 간만의 차를 잘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조석 현상은 달과 태양의 인력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태양보다 달이 훨씬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바닷물에 미치는 영향은 달이 훨씬 강하다고 하면서 마을에 달이 언제 뜨고 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을 때 학교에서 과학 박사로 통한 소녀답게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과 평소에 즐겨 읽었던 지구, 달, 태양 등 태양계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소녀는 탐험대의 출항일과 관련해 제일 중요한 것은 밀물과 썰물, 조수 간만의 차 그리고 사리와 조금에 대한 이해라고 하면서 우선 탐험대 대장인 단에게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였다.

[밀물과 썰물]
밀물은 일정한 시각에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말하고, 썰물은 밀물과는 반대로 일정한 시각에 빠져나가는 바닷물을 말한다. 밀물은 바닷물의 조수 간만에 따라서 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동안, 곧 물높이가 가장 낮게 빠져나간 때부터 물높이가 가장 높게 밀려들어올 때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그리고 썰물은 수면이 내려가고 있는 동안, 곧 물높이가 가장 높이 올라간 때부터 가장 낮게 내려간 때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바닷물 표면의 높이가 가장 높은 때를 만조라 하고, 가장 낮은 때를 간조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가장 큰 때를 사리, 가장 작은 때를 조금이라 한다. 밀물과 썰물의 주기는 약 12시간 25분이다.

[조수 간만의 차]
썰물이 되어 해변에서 물이 빠져나가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낮아졌을 때를 '간조'라 하고,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가장 높아졌을 때를 '만조'라 한다. 이 간조와 만조의 차이를 '조차', '간만의 차' 또는 '조수 간만의 차'라고 한다.

 [사리와 조금]
같은 지역에서도 시기에 따라 간만의 차는 다르게 나타난다. 달은 지구 둘레를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 달의 위상이 '삭'과 '망'일 때에는 달과 지구 및 태양이 일직선 상에 위치한다. 따라서 달에 의한 기조력과 태양에 의한 기조력이 합쳐져 조차가 최대가 된다. 이처럼 달-지구-태양이 일직선이 되어 간만의 차가 가장 큰 때를 '사리' 또는 '대조'라 하며, 매달 음력 보름이나 말일 무렵에 나타난다.
또 달의 위상이 '상현'과 '하현'일 때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이 직각을 이루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때는 달에 의한 기조력과 태양에 의한 기조력이 서로 상쇄되어 조차가 최소가 된다.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이 직각을 이루어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을 때를 '조금' 또는 '소조'라고 하며, 매달 음력 7~8일(상현)이나 음력 22~23일(하현) 무렵에 일어난다. 조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갯벌이 발달한다.


소녀의 설명을 듣고 난 단은 소녀의 과학지식에 탐복하며 크게 놀랐다. 평소 소녀가 영특하여 아는 것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우리가 공부했던 내용을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을 현실 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 살면서 평소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을 자주 보기도 하고, 마을의 동쪽 언덕 위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긴 했지만 밀물과 썰물이 달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정확히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사는 자신보다 더 자세히 마을의 바닷가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녀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태양계의 움직임과 영향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실제 탐험대 활동에 관련 지식을 활용하고자 하는 태도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단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나 독서가 현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접목되어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자기 또래의 친구인 소녀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런 소녀를 생각하니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라는 작품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었다면 네 마음속에 쇠사슬로 묶어두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좋은 친구는 인생의 등불'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소녀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모아서 알려주었다. 마을에서 전설의 섬에 도착하여 상륙을 쉽게 하기 위해 밀물과 썰물의 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 '조금' 때를 이용해 섬으로 갈 것이며, 출항일은 이번 달 상현달이 뜨는 음력 초이렛날로 정하고, 그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초여드렛날에 출항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이틀 뒤인 음력 이렛날에 각자 역할과 준비물을 챙겨 강하류 선착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또,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큰 나룻배 한 척을 준비하여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새벽 시간에 아침 일찍 출항하기로 했다. 바다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석이와 윤택이가 나룻배를 책임지기로 했다. 창의와 리솔이는 전설의 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탐사보고서로 방학과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하니 나중에 같이 가기로 했다. 각자의 준비물로 정해진 카메라와 돋보기(소녀), 스케치 도구와 손전등(리솔), 낫과 호미 등 농기구(윤택), 망원경과 밧줄(석이), 나침반(창의), 지도와 계획서(단) 등을 챙겨 오기로 했다. 나머지 점심때 먹거리나 물은 각자 집에 있는 것 중에 되는 대로 준비하여 함께 나누어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부모님께는 아이들과 함께 힘든 방학과제를 해야 하니 늦은 오후나 해 질 녘쯤에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드리기로 했다.


드디어 탐험대가 출항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이들이 새벽같이 강나루 선착장에 모였는데 어디서 봤는지 탐험대 복장을 갖추고 모두 서 있었다. 표류기나 로빈슨 크루소 등 모험 이야기에서 본 것인지 모자의 창이 넓은 중절모나 스카우트 활동 복장 등을 착용하여 정식 탐험대와 같은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치 대단한 일을 하러 가사람들처럼 있는 폼 없는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지난날의 시골 아이들이 아니고 뭔가 큰 일을 할 아이들처럼 보였다. 소녀는 아이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실행하게 되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도 탐험대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해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소녀는 전설의 섬 탐험대가 출항하는 날 자신이 가졌던 마을의 전설에 대해 의문점이 풀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탐험대의 성공을 맘속으로 기원했다. 소녀는 자신이 몇 년 전에 식물도감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 날 며칠 할머니 집 마을 근처에 서식하는 식물을 찾아 나서 결국에는 그 식물을 찾아냈던 경험과 그 당시의 기쁨을 다시 떠올려봤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전설의 섬에 가는 탐험대의 활약상과 성공도 상상해보았다.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사이 아이들을 태운 나룻배가 신비스러운 전설의 섬에 도착하여 배를 접안하려 했다. 탐험대가 섬에 상륙하는 꿈만 같은 순간을 맞고 있었다. 소녀는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어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전설의 섬에 오다니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는 꿈이 아니길 바라며 나룻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갯속에서 서서히 신비스러운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그 섬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15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