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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8. 2021

17화. 전설의 섬에 상륙하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은 마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전설의 섬으로 향했다. 어른들이 과거에 급급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싶었던 것일까. 신비스러운 섬에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었다.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반세기 이상 찌들어온 전설의 섬에 대한 두려움과 마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낸다는 심정으로 한 맘이 되어 뭉쳐야 했다. 모든 아이디어를 짜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섬에 가는 일을 준비하였다. 탐험 대장인 단은 소녀가 준 해양 정보와 아이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실속 있는 탐사계획을 짰다. 대원들의 역할과 준비할 물건들을 세세하게 안내하여 챙기게 했고, 상현달이 뜨는 조금을 택해 출항일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새벽 일찍 출발하여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전설의 섬에 나룻배를 접안시켰다. 대장인 단은 노를 젓는 아이들에게 나룻배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놓을 수 있는 지점에 배를 정박시키도록 했다. 아이들은 신비의 섬을 탐험하는 대원들답게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신중하고 차분했다. 무서운 전설을 지닌 섬이어서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가 뭍에 닿았을 때 한 사람씩 살금살금 섬에 상륙하였다. 드디어 아이들이 수십 년 간 밟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어야만 했던 금단의 땅을 밟게 되었다.


그해 여름은 다른 해와 달리 오지게도 무더운 날들이 많았다. 한낮은 물론이고 한밤중에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바닷바람을 쐬러 마실을 나다녀야 했다. 탐험대가 상륙한 섬에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으며 섬은 짙은 안갯속에 싸여 있었다. 숲은 밀림처럼 우거져 수십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무성한 열대우림을 연상하게 했다. 반세기 이상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아름드리나무들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고 날카로운 화강암으로 생성된 바위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무리 지어 치솟아 있었다. 탐험대가 상륙한 곳은 마을 건너편 자갈밭 쪽이었다. 아이들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었지만 맑은 날 섬을 바라보면 해변에 자갈밭이 보였고 위쪽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었으며 날카로운 바위산들이 한 폭의 병풍처럼 보였던 섬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신비스러운 전설의 섬에 드디어 아이들이 발을 내디뎠다. 섬에 도착하자 처음에 배에서 내릴 때는 무서워서 벌벌 떨며 살금살금 걸어 다니더니 곧 자신들이 탐사활동을 하러 온 것도 잊은 채 아이들은 자갈밭을 쏘다녔다.

"애들아, 여기 예쁜 조개껍데기들이 많아. 이쪽으로 와봐."라고 하며 리솔이가 아이들을 불렀다.

"우와~ 채집할 것들이 무척 많구나. 여기 나각을 만들 수 있는 큰 소라껍데기도 있어. 이것 좀 봐."

"이쪽 산 밑에는 조개 패총 같은 것도 보여. 조개껍데기가 한데 모여있어."

"수십 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으니 꼭 자연사박물관 같은데···."

아이들은 다들 한 마디씩 내뱉으며 전설의 섬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천진난만한 아이들로 돌아가 채집이며 해양체험을 하러 온 것처럼 한 동안 신나게 놀았다. 각자 채집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 나룻배에 실어놓기도 하고 배낭에 챙겨 넣기도 하였다. 하얗고 작은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며 방학 과제물로 제출할 거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얕은 해안가 바위틈에는 해삼이나 전복이 널려있었고 다시마나 파래, 미역 등이 바위 위에 붙어서 길게 자라고 있었다. 살짝 건드리면 보라색 물을 뿜어내는 시커멓고 물컹한 게 아주 징그러워 보이는 해산물도 보였다. 주로 바위에서 자라는 해조나 톳을 먹고사는 것으로 '군소' 혹은 '군수'라고 불리는 연체동물인데 아이들이 물속을 지나다닐 때 발길에 걸릴 정도로 많았다. 단은 이 섬에는 먹거리가 많아 혼자서 몇 년은 굶지 않고 살 수 있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두 표류기에 나오는 모험을 즐기는 대원들이나 로빈슨 크루소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전설의 섬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아이들은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대장인 단이 말했다.

"다들 아침에 새벽같이 출발해오느라 배가 출출할 테니 정오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점심을 먹자."라고 점심시간을 제안했다.

"좋아. 좋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았네."라고 하며 아이들은 모두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야, 이렇게 야외에서 도시락 먹는 게 얼마만이냐."라고 하며 석이와 윤택이가 말하자

"오늘 섬에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라고 하며 창의와 리솔이가 대꾸하였다. 사실 창의와 리솔이는 두려움 때문에 탐험대에서 빠질 뻔도 했던 생각을 떠올린 것 같았다.

"너희들 이게 다 은설이 아이디어라는 건 알고 있지?"라고 하며 단이가 소녀를 추켜세웠다.

"응. 응. 알고 있어, 은설이가 우리 마을에 안 왔으면 이런 일은 꿈도 못 꿨을 거야."라고 하며 아이들은 노는 것에 정신이 나가 있다가 먹는 얘기를 듣고는 모두들 먹거리를 꺼내놓았다. 각자 점심때 먹을 옥수수나 감자는 물론 주먹밥을 여러 개 챙겨 온 아이들도 있었다. 섬에 상륙하자마자 하는 짓을 보면 꼭 어디 유명한 곳에 체험학습을 하러 나온 아이들 같았다. 아이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무섭게 뿔을 달고 질주하던 도깨비들도 못 본채 하고 그냥 지나칠 것만 같았다. 도깨비들도 양심이 있으면 그럴 것 같았다. 상륙한 섬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으며 탐험대가 점령한 평화로운 섬처럼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아이들도 있었고 바닷가 물속에서 바위를 움직여 해양생물을 조사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섬 주변은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고 먹구름이 몰려왔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나뭇잎들을 내리쳤다. 단은 아이들을 움푹 파인 바위틈 사이로 불러들였다. 우비 같은 것은 챙겨 오지 않아서 우선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하고 봐야 했다. 한낮인데도 해가 구름에 가려져 캄캄해지니 건너편 모래톱 마을도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고 바다만 보였다. 단과 소녀는 소나기가 그치면 바로 전설의 섬을 샅샅이 탐사하려고 미리 입을 맞추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먹구름은 물러가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소나기도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다시 작렬하였다. 온갖 풀벌레들과 매미들은 앞다투어 노래를 시작했다. '찌르르, 찌르러' '맴맴맴, 맴맴맴, 매에 에에 음' 풀벌레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정말 여름방학을 이제야 제대로 맞이하는 것 같았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대원들에게 탐사활동 시작을 알렸다. 석이와 윤택이가 앞장서서 낫으로 수풀을 헤집고 한 발짝씩 나아가며 걸었다. 창의는 배를 지키기로 했었는데 언제 되돌아올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밧줄로 배를 단단히 묶어두고 같이 가기로 했다. 우선 지형을 알아야 하니 낮은 언덕 쪽 해안선이 보이는 곳을 따라 섬의 높은 지점까지 이동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쯤 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해안선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대원들은 도착했다. 안갯속에 가려진 섬의 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섬의 모양은 말굽자석처럼 생긴 것 같았다. 움푹 파인 곡선 부분이 소녀가 별장에서 희미하게 섬을 보았던 부분이고 모래톱 마을에서는 말굽의 등부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녀는 섬 모양을 카메라에 담고 리솔이는 빠른 동작으로 전설의 섬의 형체를 그림으로 스케치하며 그림지도를 만들어 갔다. 배가 정박되어 있는 곳과 말굽모양의 섬을 스케치한 후 탐험대가 이동해 온 길도 표시하였다. 그런데 대원들이 수풀을 헤치고 높은 산으로 올라오던 길을 가로질러 말굽의 곡선에 해당하는 지점에 희미한 길 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길은 말굽의 움푹 파인 곳에서 모래톱 마을이 보이는 쪽인 말굽 등부분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탐험대 대원들은 섬의 높은 마루 근처에서 대장인 단을 중심으로 탐사활동에 대한 토의를 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 왜 도깨비가 사는 섬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지 궁금해했다. 만약 이 섬에 동물이나 사람이 산다면 어느 지점에 살고 있을지도 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또, 도깨비불을 보기 위해 한밤중까지 섬에 머물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아야 했다. 처음에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섬에 생물체가 있다면 말굽모양의 안쪽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말굽모양의 굽은 부분을 가로지르는 길은 왜 생겼으며 그 길은 언제, 누가 이용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아이들은 도깨비불을 보기 위해 밤까지 섬에 남는 것은 반대가 많았다. 마을에서도 가족들이 기다리는데 늦거나 하면 전설의 섬에 오게 된 것이 들통나게 되니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탐험대는 모래톱 마을이 보이는 데는 특별히 수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말굽 곡선 부분의 움푹 파인 곳으로 산을 넘어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래톱 마을에 무서운 소문으로 퍼져 있었던 것 중에 동굴에서 괴상한 소리가 난다든지 바다에서 조업하다가 섬에서 괴물체를 본 사람들의 소문은 섬을 탐사하여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모래톱 마을을 공포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구할 수 있다고 아이들은 생각했다.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아이들은 자유 그 자체였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세상에 없는 것도 창조해낼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능력을 언제든지 증명해 보일 수도 있었다. 온갖 사회 규범과 따분한 일상에 갇혀 틀에 박힌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약한 어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였다. 반세기도 넘게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여 제물을 바치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순간만 모면하려 한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에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적으로 되돌려놓는 일은 영혼이 자유로운 자들만의 영역인 것 같았다. 세상은 역병이 창궐하여 온천지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세상의 시간은 멈춘 듯하였다. 극한 상황에서도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들은 그들의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생각만으로도 임계점을 넘어 또 다른 세상도 상상할 수가 있었다. 모래톱 아이들이 역병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전설의 섬에서 일상의 삶을 되돌리며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자체가 진정으로 역병을 극복하는 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갖은 변명으로 조용히 움츠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역병 때문에 방학과제를 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고, 두려움 때문에 전설의 섬을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달랐다. 그것이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들의 본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세상은 아이들이 창조해가는 것이며, 아이들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눈과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탐험대는 전설의 섬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소녀는 동굴 탐사와 괴생물체가 섬에 정말 존재하는지 탐사할 것을 재차 제안했다. 남자아이들이 낫과 가래로 가시덤불과 수풀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 나아가면, 여자아이들을 섬의 생태환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스케치북에 쓱싹쓱싹 그려내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낙담하거나 시들지 않고 고민하고 궁리하여 풋풋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가능한 것 같았다. 세상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지만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남다른 발상으로 전설의 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체험을 통해 어쩌면 가장 알찬 여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녀는 과학 박사 소리를 듣는 아이답게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를 상기시키며, 반세기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전설의 섬의 생태에 관심을 드러냈다. 열대우림과 같은 섬의 식물들에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작은 풀벌레마저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남도의 자연 생태에 관한 소중한 자료들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섬에 서식하고 있는 새들의 생태에 관심이 많았다. 섬에서 여름 철새인 긴꼬리딱새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푸른빛이 도는 눈 테가 인상적인 새였는데 둥지에 날아와 긴 꼬리를 한껏 자랑하기도 했다. 소녀는 긴꼬리딱새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아! 이래서 긴 꼬리란 이름이 붙었구나."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이름이 붙여진 까닭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새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어 의문이 풀린 것 같다고 했다. 또, 따뜻한 남도의 섬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팔색조도 발견하여 둥지에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보기 힘든 장면도 카메라에 담았다. 먹성 좋은 어린 팔색조는 다 자라 갑갑한 둥지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땅을 박차고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였다. 사실 팔색조는 8가지 색이라기보다 7가지 색에 가까웠는데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천연기념물이었다. 마을의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해 탐험대를 꾸린 아이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색다른 체험을 하고 있었다.


같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비슷한 역경과 고난인데도 유연하게 헤쳐갈 수 있는 건 영혼이 자유로운 순수한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일까. 어른들이 아이들을 타이름이나 시킴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창의적인 어린 영혼들에게서 배울 점을 아보고 아이들의 생각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탐험대는 처음에 생각했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설의 섬에 상륙한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모래톱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수십 년간 엄격히 금해 왔던 금단의 땅을 밟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탐험대는 마을로 돌아오는 일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전설의 섬의 신비스러운 현장을 탐사하는 일에 더 빠져 있었다. 순수한 아이들의 재기 발랄한 모습에서 밝은 미래도 상상할 수 있었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라는 어린이 헌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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