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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9. 2021

18화. 사람의 흔적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신비스러운 전설의 섬에 상륙한 지 불과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이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타고 난 천성은 두려움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어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세상사에 물들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아이들은 무인도에서 장장 28년이라는 세월을 홀로 보낸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룬 로빈슨 크루소의 후예나 된 것처럼 갖은 폼을 잡기도 했다. 각자 쓰고 있는 모자에는 꿩의 꽁지깃을 꽂아 장식을 하고 옆구리에는 막대기를 무기처럼 차고 있기도 했다. , 나뭇가지에 줄을 묶고 입갑을 끼워 낚싯대처럼 물에 담가 꽃게를 기도 하고, 양식장에서 떠밀려 온 그물을 이용해 통발을 만들어 그 속에 미끼가 될 것을 넣어 물고기나 문어를 유인하기도 했다. 탐험대 아이들은 이제 그들이 스스로 정한 미션들을 처음에 짠 목표와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수행해야 했다. 바닷가에서 산마루 쪽으로 올라온 아이들은 아까 놀면서 본 것들을 중심으로 서로가 궁금했던 점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 가운데 몇몇 친구들은 바닷가에서 놀면서 은연중에 사람의 흔적 같은 게 느껴졌다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의문점들을 서로 얘기하기도 했다.


무인도에 사람의 흔적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모르는 누군가가 전설의 섬에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즐겁게 놀았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섬에 막 상륙하여 조개껍데기를 줍느라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 있었을 때는 몰랐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되살아났다. 아무도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조개껍데기는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조개껍데기가 무덤처럼 쌓여있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조개나 굴을 까먹고 자주 그곳에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금단의 섬에서 누가 조개나 굴을 채취하여 먹었단 말인가. 평소 역사이야기 책도 많이 읽고 공상과학 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소녀가 말했다.

"조개 패총은 원시인들이 남긴 흔적인데 만일 아까 우리가 본 조개 무더기가 신석기인들의 흔적이라면 이곳은 대단한 유적지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 우리  탐험대가 선사시대 유적지를 발견한 것이 되는 거니?"라고 하며 창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석이는

"야, 우리 신문에 나는 것 아냐?"라고 하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단이가 끼어들었다.

"그럼, 아까 그것이 신석기시대 조개 패총인지 아닌지 다시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래 제대로 탐사를 해보자."라고 하며 다들 그곳으로 다시 내려가 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나룻배를 정박시킨 상륙 지점으로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앞서 내려가던 몇몇 아이들이 움찔했다.

"우리 머리 위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어."라고 하며 스케치를 하던 리솔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잘 봐. 저쪽 높은 나뭇가지 쪽이야. 큰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여기저기를 자꾸 휘둘러 살피고 있어."

아이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빨리 피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어."라고 하며 모두 황급히 바닷가 쪽으로 내달렸다. 나뭇가지에서는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아래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아이들은 다들 한 고비 무사히 넘겼다고 여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탐험대가 다시 상륙 지점에 내려왔을 때 나룻배는 정박해 있던 곳에 잘 묶여 있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의문을 품었던 조개 무더기 쪽으로 가보았다. 탐사 전문가가 된듯한 소녀에게 조개 무덤을 감정해보라는 듯이 아이들은 모두 소녀 쪽을 쳐다봤다. 아이들도 각자의 기준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조개 무더기가 좀 이상해."

"패총은 아닌 것 같아. 우리가 책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른 것 같은데."

아이들은 모두 과학에 조예가 있다고 느낀 소녀의 입만 쳐다봤다. 소녀는 마치 탐사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돋보기를 꺼내 들고 조개 무더기를 요리조리 관찰하다가 입을 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개껍데기 표면에 있는 줄무늬가 너무 선명해. 그리고 오래된 껍데기도 있고 최근에 버린 듯한 껍데기도 섞여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신석기시대 유적이 맞아? 안 맞아?"하고 소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소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탐험대가 한 가지는 얻은 것  같기도 해."

"한 가지를 얻어?"하고 아이들이 말을 받았다.

"조개 무더기가 유적지는 아니지만 이 섬에 누군가 사람이 있다는 흔적은 발견한 것 같아."라고 소녀는 말했다.

소녀의 설명은 이랬다. 조개 무더기에는 시간적으로 오래된 것도 있고 최근에 버린 것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지금 이 섬에 사람이나 짐승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했다. 따라서 근처에는 분명히 사람이나 짐승이 있다는 또 다른 흔적도 있을 테니 함께 찾아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표류기의 모험 소년들처럼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변을 샅샅이 탐사하였다. 잠시 후 모래톱 마을이 보이는 쪽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모두 그쪽으로 달려갔다.

"불을 피운 흔적 같은 것이 있어."라고 창의가 손가락으로 그을음이 묻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머리를 들이대며 바위를 손으로 문질러보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불을 피운 것이 사실인 것 같아."라고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소녀를 쳐다봤다. 아이들은 과학 박사로 불리는 소녀의 말을 듣고 싶었다.

"원시인들처럼 불을 이용해 조개나 해산물을 익혀 먹은 것 같아."

"저녁에 이곳에 불을 지피면 마을에서도 불빛이 보일 것 같아. 아마도 도깨비불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나 짐승이 불을 지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소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야, 그런 것 같아. 지은설이 추리력 대단한데."라고 하며 아이들 모두 소녀가 추리한 도깨비불의 정체를 인정하는 눈치였다. 그때 석이가 궁금한 것이 있다며 말했다.

"왜, 이곳에서 조개나 굴, 게 등 갑각류 같은 것을 요리했을까?"라고 하자

"자기가 사는 곳이 아니고 왜 이곳이야?"라고 하며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또 소녀 쪽을 일제히 바라보며 추리를 해보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소녀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아마도 이곳에 해산물은 많이 나지만 섬 모양을 보면 말굽의 튀어나온 곡선의 외곽 부분이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곳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동굴생활을 해야 하니 동굴 쪽에 터전을 잡았을 것 같아."라추리했다.

아까 내려오면서 본 오솔길로 섬의 움푹 파인 곳 쪽에서 넘어와 껍데기가 붙은 무거운 해산물을 지고 산마루로 넘기는 힘든 일이니 아마도 여기서 익혀서 먹고 갔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수긍이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녀는 사람의 흔적을 더 찾아 퍼즐을 완성시키면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탐험대 대원들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해주었다.  


조개껍데기와 불을 피운 흔적 그리고 산마루를 넘어서 오고 간 오솔길까지 퍼즐을 맞춘 아이들은 또 다른 퍼즐을 찾기로 했다. 아이들은 퍼즐 맞추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힘든 것도 잊고 탐사활동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어느 책에서도 적혀 있었던 '즐기면 이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대장인 로단은 소녀의 설명을 듣자마자 말굽자석의 등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아까 산마루에서 본 움푹 파인 만(灣)처럼 생긴 곳으로 오솔길을 따라 넘어가 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머리 위쪽 나뭇가지에서 이동하던 5미터 이상의 큰 구렁이가 놀라지 않도록 내려왔던 길을 살금살금 다시 올라갔다. 오솔길을 따라 마루에 다다른 아이들은 산을 넘어 만(灣)처럼 생겼으며,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곳으로 내려가야 했다.  


전설의 섬의 형체(말굽모양)


이번에도 석이와 윤택이가 앞장을 섰다. 수풀을 헤집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험한 길은 아니었으며 사람이나 짐승이 다닌 흔적이 있는 희미한 길이었다. 모두 대장의 신호에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모래톱 마을의 반대편 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앞장서서 가던 석이와 윤택이가 멈칫하며 멈춰 섰다. 앞서 가다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들은 내려가던 길의 저 아래쪽 수풀 속에 흰색 통이 보인다고 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고 여러 개가 쌓여 있다고 하며 헐레벌떡 가던 길에서 돌아와 본 것을 전해주었다. 천천히 뒤따르던 아이들은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 살금살금 이동하며 따라 내려갔다. 탐험대는 흰 통이 보이는 곳 쪽으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열대우림과 같은 숲 속에 인간의 손길이 닿은 하얀 통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옛날 막걸리통은 왜 이곳에 있으며 또 쌓여 있는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사람의 흔적인 것은 분명했다. 누군가 이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자신들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섬에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갑자기 소름이 돋고 추운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 대낮에 한기가 들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지다니 피서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산마루에서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길에서 본 막걸리통을 발견하고는 온갖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탐험대는 신비의 섬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람의 흔적을 찾은 것이었다. 고개를 넘어 다니는 오솔길이 있었고, 조개 무더기 옆에는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에서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막걸리통이 쌓여 있기도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섬을 수 십 년간 금단의 땅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모래톱 마을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탐험대는 무인도 표류기나 원시인들의 생활에 비추어 볼 때 움집이나 동굴과 같은 피신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흔적에 대한 퍼즐은 거의 완성될 듯했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막걸리통 가까이로 내려가고 있었다. 막걸리통의 정체는 곧 인간이 전설의 섬에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옛날 막걸리통은 왜 숲 속에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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